2019년 7월 4일(목) 연합회 강당에서 제1차 YWCA 미래가치포럼이 열렸다. 김은주 위원장(미디어소통위원회) 진행 이종관 교수가 <인간의 미래,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일>을 주제로 강의했다. 제1차 포럼 강의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본 내용은 2019년 월간<한국YWCA> 7+8월호에 실렸습니다.
인간, 창의성, 미래에 대한 예비적 성찰
4차 산업혁명에서 사람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었다. 대체 사람은 누구인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무엇과도 또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독보적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모든 인간의 탄생은 기적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을 배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더욱 인간적인 미래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생각해야 한다. 창의성을 논할 때 길잡이가 되는 인물이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discover)하는 것이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새로운 눈은 근원을 향해가는 귀환의 길에서 탄생한다.” 근본적인 것은 이미 드러나 있으나 한 시대의 상식, 편견에 사로잡혀 가려져있을 뿐이기에, 근본적으로 생각할 때 중요한 것들이 드러난다.
미래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미래라는 시간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시간으로,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에 기원한다. 희망과 기대를 품는 인간에게만 미래라는 시간은 존재한다.
인간 미래에 대한 세 가지 비전
인간의 미래에 대한 세 가지 비전-인공지능의 아바타, 죽지 않는 포스트휴먼, 죽음을 인정하면서 본래적 자신을 향해 사는 존재-이 있다. ‘인공지능의 아바타’로서 인간의 미래는 알파고를 통해 이미 그 사례를 목격한 바 있다. 이 대결에서 인간의 미래를 보여준 것은 알파고 대역 아자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공지능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역할을 맡았고 따라서 행동하고는 있지만 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 존재였다. 일하고 있지만 일하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상당수 인간이 일을 잃고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하는 광경을 볼지도 모른다.
‘죽지 않는 포스트휴먼’의 인간 비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몸은 도태되고, 첨단기술에 의해 완전히 성능이 증강된 인간 이후(post human)의 존재자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칼리코(Calico)라는 바이오 기업을 창업해서 인류가 500세까지 살게 하는 기술을 발명하는 ‘칼리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이자 구글과 나사(NASA)가 지원하는 싱귤래리티 대학 총장이며, 1960년 이후 인공지능 개발에 참여한 인지과학자 레이 커즈웨일에 의하면 2045년이면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완벽하게 뛰어넘을 것이며 스스로 사고하는 컴퓨터에 의해 인류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공지능은 인간들과 결합해 ‘포스트휴먼’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알파고를 개발해낸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총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죽음을 인정하면서 본래적 자신을 향해 사는 존재’로서 인간을 보는 비전은 스티브잡스가 언급한 인간에 가깝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고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임이니까. 죽음을 직면해서는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이다.” 레이 커즈웨일은 죽음을 결함으로 본다. 반면 스티브잡스는 죽음을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라고 말한다. 두 가지 미래 비전은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 네오휴머니즘(Neohumanism)으로 존재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테크노퓨쳐리즘에 입각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 존재를 질적으로 혁신한다는 과학기술 결정론적 입장이고, 네오휴머니즘은 인간의 실존적 허무화에 직면하여 인간존재의 의미를 재확보하려는 사상적 움직임이다. 전자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 조건을 혁신시켜 나갈 것’이라고 보고 후자는 ‘이제 보다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라고 본다.
오늘날 이 두 비전은 현실에서 전자기기 등으로 실현되고 있다. 구글은 증강인류 추구, 구글 글래스를 개발했다. 이 구글 글래스는 초기에 각광을 받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인간의 눈을 기능적으로 렌즈로 접근한 오류다. 반면 애플은 다른 접근을 취했다. 기기보다 사용하는 사람을 중심에 둔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채택했다.
두 비전이 도시에 적용되면 트랜스휴머니즘은 현재 추세대로 대도시 중심의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게 된다. 아파트의 초고층화, 드론 배송의 보편화가 미래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스마트 시티는 과거의 귀중한 유산을 현재적으로 재해석해 미래에 전승하는 것이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은 옛 도심의 건축물 등을 유지한 채 실시간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기술을 접목한다. 그러나 스마트 시민(Smart Citizen)없이 스마트 시티(Smart City)는 불가능하다. 스마트 시민이란 지능적(intelligent)이 아니라 지성적(intellectual)으로 깨어나서 공동체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인간이다. 그들을 통해 현재가 좋은 역사로 미래에 계승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자동화, 일: 트렌드와 문제점
제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융합과 연결이 주가 되는 산업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인터넷 통신망으로 연결되는 초연결성, 연결에 따라 발생하는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일정한 패턴을 파악하는 초지능성,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예측 가능성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은 20세기 후반부터 출현한 정보화 기술 즉 IT임이 분명하다. 인간, 기계, 사물 등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 단계까지 진입하고 있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두뇌는 인공지능으로, 더 이상 인간의 역할이 필요 없는 산업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일자리 논란이 일고 있다. 일자리 논란은 위험 관리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일은 깨달음의 근본적 형식이자 세상을 직접 참여하여 깨닫는 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일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가며 지혜를 체득한다. 삶의 주인이 되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일은 인간의 삶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일은 나와 타자가 함께 이루어내는 사회적 융화활동이다. 나와 타인의 긍지에 찬 협력으로 진행되는 일은 끊임없는 공감의 성취 과정이며 창의성의 원천이다.
인간만이 일(work)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다만 작동(function)할 뿐이다. 인공지능으로 운영되는 경제는 인간에게서 일을 빼앗아 미래라는 시간을 증발시키고 몸을 무력화하여 중독의 상태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AI와 인간의 상호작용 : 어떤 길로 가야할 것인가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래 기술에 대해 새로운 방향 설정이 시급하다. 이러한 기준에서 눈여겨 볼 기술이 적응형 자동화(adaptive automation)이다. 이는 인공지능에 의한 완전자동화(full automation)와 달리, 인간을 일에서 추방하지 않고 인공지능에 대하여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친인간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기술이다.
기술발전의 방향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일과 인간의 협력을 중재하는 기술의 개발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봇 개념을 코봇(Cobot)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공장설비의 무인화보다는 인간을 일의 주체로 인정하여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로 로봇 역할을 한정하려는 시도이다.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1월 다보스포럼 핵심 의제로 선정되면서 처음 공론화된 개념이다. 그러나 독일은 2011년에 이미 ‘Industrie 4.0’정책을 추진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독일 정부의 슬로건은 ‘연대와 정의, 협력과 복지는 오직 공동으로만 성취된다’이다. 4차 산업의 기반인 Internet of Thing은 Internet of Human이 되어야 하며 4차 산업혁명은 결과가 아니라 더불어 기획해가는 과정이며, 기술 혁명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위한 진화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종관(성균관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