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돌봄과 의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작년 의료 대란 이후, “만약 우리 가족이 아프면, 병원을 갈 수 있을까?” 라는 불안이 커졌습니다. 한국YWCA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공론장을 열어왔습니다. 그동안 ‘3분 진료’의 아쉬움부터 복잡한 실손보험 문제, 지역 간 의료 격차까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현실을 치열하게 논의해왔죠. 이 날 열린 4차 토론에서는 그간의 고민들을 하나로 모아, 병원 안을 넘어 지역사회 돌봄으로 이어지는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병원을 넘어 집으로, 디지털로… 경계를 허무는 의료 시스템
“병원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끝, 이제 ‘찾아가는 팀’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공드림 통합돌봄센터 장지훈 센터장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우리 집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식습관까지 챙겨주는 상상, 해보셨나요?” 그는 초고령 사회에서는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다학제 팀’을 이뤄 집으로 찾아오는 ‘재택의료센터’가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약만 처방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도록 의료와 복지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것이죠.

“따로 노는 의료와 돌봄,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의료전달체계가 필요합니다”
이어 발제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오주환 교수는 “한 차트를 여럿이 보려면 머리를 부딪칠 수 밖에 없다.”는 뼈 있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현재 의료 기록 시스템을 꼬집은 것이죠. 오교수는 경쟁에만 익숙한 우리 의료 현장에 ‘협력하는게 더 이득이 되는 구조(거버넌스)’를 강조하며 대만의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대만에서는 치료가 더이상 힘들 때, 다급하게 응급실로 달려가는 대신 의료진이 집으로 찾아오고, 점차 돌봄 팀과 가족에게 역할을 넘겨줍니다. 덕분에 환자는 차가운 병실이 아닌, 익숙한 내 집에서 ‘존엄하고 평온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죠. 이처럼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한 몸’처럼 뭉쳐야 환자의 삶을 온전하고 안전하게 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턱 넘어 발견한 희망
발제를 듣고 토론을 거치며 막연했던 걱정은 어느새 ‘함께 돌보는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다시 마주 앉아 시민들의 속마음을 들어봤습니다.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 발만 동동 구를 때 열 관리 앱이 알려준 대로 약을 먹이고 열을 체크해 고비를 넘겼어요.” 한 시민은 어린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경험을 얘기하며, 우리가 고립되지 않도록 의료와 가정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또 요양원에서 부모님을 떠내 보낸 경험이 있던 시민은 “만약 이런 통합 돌봄 시스템이 진작 있었다면, 부모님을 내 집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모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내비쳤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환자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인 단단한 협업체계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은하에 수놓는, 은하투표
이번 토론이 더 특별했던 건 바로 빠띠의 ‘은하투표’때문입니다. 은하투표는 단순 찬반 투표를 넘어,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생각의 지도’를 그리는 방식입니다. 특이한 점은 ‘잘 모르겠다’나 ‘보통이다’ 같은 중간 선택지가 없다는 점인데요. 조금 곤란하더라도 명확한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모인 답변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시각화되어, 나의 생각이 전체 중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한눈에 보여줍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대화를 나누며 별(생각)의 위치가 은하수처럼 흐르고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번 사전・사후 변화를 보여주는 ‘생키차트’(Sankey Chart: 흐름을 보여주는 시각화)를 처음 도입하여, 대화를 통해 시민들이 생각이 어떻게 이동하고 흐르는지 더욱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날도 그 변화의 흐름을 확인 하기 위해서 토론 전, 우리 별이 어디에 모여 있는지 투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투표 결과,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위한 시민들의 간절함이 명확하게 드러났죠. 참여자의 73%가 ‘현재의 치료 후 돌봄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꼬집으며, ‘나를 잘 아는 주치의’(93%)와 ‘여러 전문가가 협력하는 다학제 팀’(95%)의 도입 필요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줬습니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개인정보 노출 등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통합된 정보 관리와 비대면 진료를 통해 ‘끊김 없는 연결’을 택하겠다는 의견이 70%를 훌쩍 넘겼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생각 지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토론이 끝나고 다시 진행한 은하투표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엔 치료 후 돌봄 시스템이 전무하다고 느꼈던 분들이 토론 후 “기반은 있구나”하는 가능성을 발견하며 긍정적인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니 포착되었습니다. 주치의 제도와 다학제 팀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단순 동의를 넘어 ‘매우 그렇다.’는 94%로 확신으로 바뀌었죠. 가장 역동적으로 별이 이동한 분야는 ‘디지털 의료’ 였습니다. 편의성에 공감해 찬성을 한 분도, 안전을 우려해 신중하는 분도 있어 별들이 양끝에서 빛났죠. 하지만 중요한 것을 생각의 변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있으며, 함께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자서는 이상(理想), 함께 꾸면 현실 그 이상(以上)
“제가 한발 내딛자, 같이 따라오시더라고요.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지훈 센터장은 시작 무렵에 겼었던 외로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혼자의 꿈이 모두의 꿈으로 모이자 점점 현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상적인 의료 시스템처럼 보일지라도, 함께 꿈꾸고 걸어나간다면 곧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만 봤던 괴짜 의사의 진료는 더이상 가상의 이야기거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지도 모릅니다. 은하에 별을 계속해서 수놓는 다면 변화의 흐름이 열리고, 이상(理想)이라 여기던 것들이 현실 그 이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은영 한국YWCA연합회회장은 “올해 공론장이 주로 의견을 듣고 이슈를 제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내년에는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공동행동을 기반으로 YWCA 공동 플랫폼을 더욱 확대·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의료 소비자의 권익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단위의 교육 과정을 이미 구조화했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활동가 그룹 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지역 시민 활동가들과 연계해 확산할 계획”이라면서 “내년에도 시민과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료 소비자의 주권을 회복하고 더 나은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2026년에는 의료 소비자의 주권 회복을 위한 더 힘찬 한 걸음을 내딛을 예정입니다. 그 한걸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