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YWCA, ‘안전한 공간’을 주제로
여성 청소년·청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협의회 열어
● 광복 80주년을 맞아, 제12회 한·일YWCA협의회 열려
● ‘여성 청소년·청년을 위한 안전한 공간(이바쇼, safe space)’ 주제로 논의
● 차별과 혐오에 맞서, 여성 청소년·청년이 자기다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네트워크 형성, 지역사회 자원 연결 등 액션플랜 수립
“여성 청소년과 청년이 자기다운 삶과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과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제12회 한·일YWCA협의회가 2025년 7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간 일본 가나가와현 쇼난국제마을센터에서 열렸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YWCA가 여성 청소년·청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 인권·평화·이바쇼(safe space)’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협의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YWCA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한 양국의 사회적 현안과 YWCA의 실천을 공유한 뒤, 공동 행동을 지속할 것을 결의했다.
조은영 한국YWCA연합회 회장과 사사베 마리 일본YWCA 부회장을 포함한 총 23명의 양국 활동가가(한국YWCA 활동가 8명, 일본YWCA 활동가 15명) 이번 협의회에 참가하였다. 프로그램은 한일YWCA의 국가보고, 가와사키 사쿠라모토 지역과 요코하마YWCA 현장 탐방, 지역 내 활동 보고, 워크숍과 공동 성명서 및 액션플랜 채택으로 구성되었다.
“Safe Space,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의를 회복하고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는 사회적 전환의 장”
제12회 한·일YWCA협의회의 핵심 개념인 ‘Safe Space(안전한 공간)’는 세계YWCA가 여성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핵심 의제로 제안한 전 세계 YWCA의 공동 과제이다. 이러한 세계YWCA의 비전을 바탕으로, 이번 협의회는 한일 양국의 사회적 현실에 맞는 안전한 공간의 조건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으로 마련되었다.
한국YWCA는 국가 보고를 통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분단 및 독재로 인한 국가 폭력의 역사와 그 속에서 젊은 여성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특히 일본군 성노예제에 관해 언급하며, 정의로운 회복 없이 역사성을 무시한 채 안전한 공간은 성립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어 오늘날 청년의 은둔·고립 문제, 백래시로 인해 심화한 구조적 성차별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젠더 폭력 등 여전히 안전이 위협받는 현실을 짚으며, 이러한 사회 속에서 여성 청소년과 청년이 직접 만들어 낸 연대의 광장을 ‘안전한 공간’의 사례로 소개했다. 응원봉과 깃발, 나눔 등으로 만든 광장은 단순히 보호의 공간이 아니라 연대와 다정함, 주체적인 목소리로 가득 찬 안전한 공간이었으며, 이를 일상 속으로 확장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임을 밝혔다.
일본YWCA는 국가 보고에서 전쟁 책임을 둘러싼 역사 수정주의가 청년 세대 내 확산하며, 전쟁의 피해와 책임을 분리하고, 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한 사회적 질서가 약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쟁 책임을 묻는 것은 과거의 반성을 넘어 오늘날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기 위해 평화의 질서를 고민하는 과정이며, 이는 바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일임을 강조했다. 또한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여성 대상 성폭력 문제를 공유하며, 국가 간 권력 차이와 일본 내 지역 간 차별이 특히 여성들에게 구조적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렸다. 일본YWCA는 강간과 살해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오키나와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군의 전면 철수와 오키나와 주민과 여성들의 동등한 권리와 안전 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지역 공동체의 응답, 가와사키 사쿠라모토 지역 방문
참가자들은 둘째 날 가와사키 사쿠라모토 지역을 방문해 재일대한기독교회 가와사키 교회와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사를 중심으로 재일한국인 공동체가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워온 과정을 직접 들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외국인으로 지위가 바뀌며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재일한국인들은 취업에 대한 차별과 사회보장에서 배제되었고,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야 했다. 이에 사쿠라모토의 지역 공동체는 행정 차별 철폐와 정체성 보존을 위한 ‘생활권 운동’을 전개하며 유치원과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는 등 지역 복지의 근간을 세워왔다.
이러한 실천은 혐오에 맞선 지역의 평화운동으로 확장되었다. ‘도라지회’ 할머니들의 반전 시위 이후, 사쿠라모토 지역을 표적으로 삼은 혐오 발언 시위에 맞서 일본 국적의 청년들이 길거리에 누워 지역으로의 진입을 저지하는 등 공동체적 저항이 일어났다. 한 재일교포 여성은 혐오 발언 시위대에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자”고 말하며, 덩어리가 아닌 개인으로 마주하는 평화와 환대의 제스처를 보였다. 이러한 지역 기반 연대는 일본 상원의 차별철폐법 제정과 실질적 처벌 조항을 포함한 가와사키시 조례 제정으로 이어졌다. 재일한국인을 넘어 모든 일본 외 국적자에게 확장된 평화운동은 연대를 바탕으로 한 지역 중심의 안전한 공간 실천으로서 참가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로의 삶을 지지하며, 일상에서 만들어 가는 안전한 공간
셋째 날, 양국YWCA는 청소년과 청년을 위해 지역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안전한 공간’ 실천들을 공유하였다. 한국YWCA는 청년부회장, 청년이사제도를 통해 의사결정과정에 청년이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 사례를 소개했고, 청소년 및 청년 협의체, 여성 청년 활동가가 기획한 프로젝트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청소년과 청년이 자신만의 언어로 의제를 탐색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나누었다. 특히, 서귀포YWCA의 청소년문화의집, 창원YWCA의 여성청년 자살예방프로그램, Y-틴 드림십 청소년국제교류 활동, 키다리학교 사례를 통해 청소년·청년이 자기 주도성을 실현하는 사례를 공유했다.
일본YWCA는 교토, 나고야, 후쿠오카 등 여러 지역 YWCA에서 운영 중인 여성 청년 자립지원 홈과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 어린이를 위한 학습 교실, 여성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카페와 키친 등을 사례로 소개했다. 이를 통해 젊은 여성들이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충분히 획득하고, “살아도 괜찮다”라는 감각을 회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고 강조하였다.
한편, 특별 발표에서는 양국의 모범 사례로 청소년 중심 공공도서관 ‘라이브러리 티티섬’과 위기 여성 청년과 함께하는 ‘BOND 프로젝트’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학교와 학원 사이의 ‘사이 시간’에 청소년들이 편하고 즐겁게 머물 수 있는 티티섬은 청소년의 감각과 경험을 존중하는 공간이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또래와 연결되는 새로운 실험이다. BOND 프로젝트는 약물 과다 복용과 성착취, 주거불안 등 위기 상황에 놓인 여성들을 동 세대 여성들이 SNS와 거리에서 직접 찾아, 개별 상황에 맞는 상담, 쉼터, 자립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한·일YWCA “여성 청소년·청년이 자기다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
한국과 일본 YWCA 활동가들은 보고와 현장 탐방을 마친 뒤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안전한 공간’에 대한 공동 입장과 향후 연대 행동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일YWCA는 안전한 공간이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존엄과 배려, 성찰과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적 실천임을 확인하고, 여성 청소년과 청년이 자기다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으며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과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결의하였다.
양국YWCA는 이번 협의를 통해 다음과 같은 공동 행동 방향을 제시했다.
▲ 여성 청소년과 청년의 고통을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알리는 활동 전개
▲ 경험을 나누고 사회적 의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한·일 네트워크 구축
▲ 청소년·청년이 주체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기반의 공간과 기회 마련
▲ ‘안전한 공간’의 지속적 운영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 발굴 및 연결
▲ 안전한 공간 실천 사례를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실천 경험을 확산
참가자들은 안전한 공간에 대한 고민이 이번 협의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지역과 일상에서 시작될 새로운 실천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향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