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ywca 소식 뉴스/공지
한국YWCA ‘생명운동의 해’- ‘탈핵 실천 에너지 운동'(1) 탈핵 활동가 초청 강연회 2013.04.30


후쿠시마 탈핵 활동가 카타오카 테루미 씨 초청 강연회


-우리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취지 및 목적


 


2013년은 후쿠시마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폭발 참극이 벌어진 지 2주년이 되는 때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대지진 및 원전 폭발 사태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과 대안에너지 체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되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현지 주민들의 생활은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의 정신적 후유증과 방사능의 일상적 공포로 더욱더 고통스럽고 복잡한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피해지역 주민들과 방사능 피해 확산을 우려하는 일본 시민들의 탈원전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다.


한편, 2011년 대정전 사태를 맞이하고, 몇 해 동안 혹한의 동절기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안정적 전력수급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너지원으로서 오히려 핵발전소의 비중을 확대하려 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안심할 수 있는 에너지수급 방안 마련’이라는 공약과 달리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 확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이후 탈원전과 대안에너지 길로 들어선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과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웃나라 일본 또한 현재 54개 원자로중 3대만 가동중인데도 전력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으며 큰 변화 없이 탈원전 정책 기조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전세계가 탈핵(탈원전)의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과 다르게 박근혜 정부 5년은 경제발전의 가치를 시민의 안전보다 더 위에 두고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만을 중요시하는 기조로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기후협약을 앞두고 온실가스 감축과 원자력발전소 안전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더욱더 높아질 것이므로 탈핵 사회로 나아가기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한국YWCA는 그동안 고리원자력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는 성명서와 항의 운동 등에 동참해 왔고 안전한 먹거리 운동, 특별히 방사능오염 식품 모니터링 등 환경 관련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특별히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2주년을 맞는 2013년에는 ‘탈핵 실천 에너지 운동’을 주력운동으로 삼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핵없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핵과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을 시민사회에 더욱 널리 알리는 운동을 활발히 전개할 예정이며, 또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이끌어 내기 위한 에너지 절약 실천운동과 태양광 설치 운동 등도 함께 전개할 예정이다.


이의 일환으로,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 지점에서 반경 100킬로미터에 거주하며 ‘방사능정보센터’의 대표로서 탈핵․탈원전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카타오카 테루미 씨 를 초청하여 순회 강연회를 열고자 한다. 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이후 방사능의 공포와 공동체의 붕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지역 주민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또 일본 사회 탈핵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초청 강사


카타오카 테루미(片岡輝美)


1961년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에서 출생, ‘방사능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모임-아이즈’ 대표 및 ‘아이즈 방사능정보센터 대표로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지점에서 100킬로미터 반경 내의 아이즈와카마츠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사고 이후 방사능 피해 진상 규명과 모니터링 사업, 특별히 방사능으로부터의 어린이 건강 피해 조사 사업 및 피해자 지원 활동 등 탈핵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크리스천이며 부모님이 목회하던 와카마츠에이마치 교회에 남편이 목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평화헌법9조를 지키는 모임’ 등을 통해 평화운동을 전개해왔다.


 


강연 내용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핵발전소 반경 100킬로미터 지역 사회의 변화


-방사능 피해 (특히 어린이 건강 문제) 상황과 방시능 감시 시민활동


-탈핵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변화와 노력 등등


-탈핵을 위한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의 연대 호소


-기독교인으로서 후쿠시마 참사를 겪으며 느낀 것들


 


<강연 참고 자료>


 


“우리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후쿠시마 어머니들의 외침


 


카타오카 테루미(아이즈방사능정보센터 대표)


 


 


*이 글은 2012년12월 5일부터 7일까지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시에서 개최된 핵에 관한 종교인 국제회의에서 발표된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혼란에 휩싸인 후쿠시마현민


2011년 3월15일부터 약2주일, 동안 저는 막내아들과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아이들 2명과 함께 아이즈와카마츠에서 약450킬로 떨어진 미에현 스즈카시에 사는 동생집에서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3월말, 아이즈와카마츠로 되돌아 온 후 내가 만난 것은, 방사능피폭을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그와는 완전히 반대로 아무일도 없었던 것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 직후로부터 되풀이되어온 말들, 즉 “걱정할 필요 없습어요, 건강에 그리 즉각적인 영향은 없습니다”라고 하는 일본정부의 ‘안심안전선언’을 많은 현민들이 믿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학자의 말이니까 믿어야지 하면서 작은 희망에 매달리려고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의 피폭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들은, 달랐습니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핵발전소의 사고.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터라, 그 공포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불안을 느끼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습니다. 불안함을 표현하면 남편이나 가족, 그리고 지역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정치가와 학자들이 안전하다고 말하는데 왜 그렇게 예민한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나만 이상한 것일까? 이건 지나친 걱정일까?”라라고 되뇌이고 혼자 공포와 싸우면서 그 생각을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히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과, 한편으로 안전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사이로 들어와서 더욱더 그 두 집단의 분단을 확대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나가사키대학의 교수이며 갑상선학회의 권위자, 야마시타 슌이치 교수입니다. 야마시타교수는, 대혼란에 휩싸인 후쿠시마현청과 현립 후쿠시마 의과대학 측에 힘을 써서 후쿠시마현 방사선건강 리스크 관리 어드바이저(adviser) 및 후쿠시마 의과대학 부학장에게 취임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초청하기도 했고 후쿠시마 현 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강연을 하면서 자신이 체르노빌에서 의료활동을 하며 경험한 사실들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은 연간 100mSV 정도 피폭해도 괜찮다.”, “웃는 사람에게 방사능은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은 국가 긴급 상황이므로 국민은 국가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등의 말로 안심 안전 캠페인을 선전하였습니다.


작년 5월5일, 아이즈와카마츠시 인근 기타카타시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야마시타 교수는 “후쿠시마현 아이들은 운이 좋은 겁니다. 높아진 방사선량을 자기들 스스로 측정해서, 그 영향을 신체로 느끼면서 알게 되기 때문이죠. 그것을 극복했을 때에 원자력의 힘에 눈을 뜨고, 그래서 그들은 위대한 과학자나 의사가 생겨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라고, 청중에게 역설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분노하여 “우리들은 몰모트(실험용 생쥐)가 아니야.”라고 외쳤습니다.


 아이즈방사능 정보센터 회원인 한 젊은 엄마는 어느 날 지진 정보를 얻기 위해 라디오를 켰습니다.바로 그 때 흘러 온 것이 야마시타 교수의 강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젊은 엄마는 야마시타 교수의 말을 믿었던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야마시타교수의 이야기를 믿은 나는, 집에 물이 안 나온 상태였던지라 우리 아이와 함께 급수차의 뒤에 나란히 섰는데 그 때,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분하기 그지없지만, 방사능의 위험성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우리 아이에게 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던 피폭을 당하게 만들어 버린 거죠. 어쩌면, 우리 아이에게 암이 발병할 지도 몰라요. 그래서 만일을 위해서 우리 아이 앞으로 암보험을 들었어요. 방사성 물질이 축적된다고 하는 머리털이나 손톱도, 그 때의 증거로 하기 위해서 보관하고 있어요.”


야마시타 교수의 이야기가 의심스럽다고 판단한 그녀는, 핵발전소 사고 약1개월 후에 남편과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고오리야마시로부터 니이가타현으로 약 3개월 동안 피난하였고, 그 후 아이즈와카마츠시로 이사해 왔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살고 있던 고리야마시의 주택 융자금을 여전히 지불하고 있는데, 아이즈와카마츠시에서 생활하기 위한 월세 또한 지불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겪고 있고, 더군다나 남편은 매일 1시간이상 넘는 출퇴근 시간을 쓰며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원래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희망에 가득한 일일 터인데, 지금 후쿠시마의 부모들은 크나큰 불안과 후회를 끌어안고 매일매일 생활하고 있습니다.


 


분단된 사람들


불안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의 피폭을 두려워하면서 피난 지시 구역이 아닌데도 높은 방사능이 측정되는 자기의 삶터로부터 피난하기로 결의했을 때, 대부분은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고 은밀하게 집을 떠났습니다. 주위에 피난 사실을 알리면, “그래 좋겠구나, 도망칠 곳이 있어서” 라는 말을 듣습니다. 피난하는 사람들을 비겁자라고 일컬어지지 않을 뿐, 냉정하게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인간관계가 깨지는 것을 두려합니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전학을 결정했을 때, 부모 자신은 담임교사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아침 등교해보니, 어느 사이에 같은 반 친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피난을 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신과 자기의 가족만이 피난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자기들만 피난 온 사실에 대해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아이들을 설득해서 피난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또, 가족 전원이 피난에 찬성하지 않을 경우, 부부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어 갑니다. 지금 이 상황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남편과 불안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내. 이렇게 되면서 부부가 이혼을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로 이혼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마가 억지로 자신들을 피난시켰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무서워하는 엄마 때문에 우리들은 친구랑도 헤어지고 아빠하고도 떨어져서 지금 너무 외로워요.”라고 엄마를 원망합니다. 중요한 것들도 모두 버리고 어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결단한 후 피난을 했는데도 가족들로부터 고립되어가는 엄마들. 그들은 ‘나는 제멋대로인 사람인가, 아이들에게 이런 슬픔을 안기는 나를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가족이 헤어져서 생활할 것을 결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 때문에 피 난을 가지 못하는 남편이 집에 홀로 남고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다른 현에 피난시키는 경우나, 사고 전엔 3세대, 4세대가 사이좋게 생활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칸사이 지방으로 피난시키면서 헤어져 살게 된 대가족의 경우입니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오래 산다 해도 증손자들과 이 지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방사선 선량이 높은 곳으로 아이들이 되돌아오지 않는 한 고령자인 자신들이 먼 곳까지 여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은, 우리들의 신체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마저도 갈라놓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조사인가


야마시타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은 잇달아 후쿠시마현에 들어와 순회강연을 하는 것 외에 현민 건강조사나 ‘홀 보디 카운터(Hole Body Counter)’에 의한 내부 방사능 피폭 검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18세 이하 갑상선검사에서 지금까지 8000명 가까이 검사를 받았는데, 약 40%가 갑산성에 낭포와 결절이 있는 걸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제1차 검사에서는 거의 전원이 2차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전국갑상선학회 의사들에게도 2차 검사가 필요 없다고 통지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불안해하는 부모들이 ‘세컨드 오피니언(2차 소견)’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저지해서 현민의 분노를 샀습니다. 2012년 9월11일, 한 명의 어린아이에게 갑상선암이 발병된 것이 밝혀졌지만, 이 또한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현민건강조사 관리 검토 위원회가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2주일 후인 10월 초순, 이 발표가 있기 직전에 비밀회의가 열려 암이나 낭포나 결절은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와는 관계가 없는 걸로 말을 맞추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의 거센 항의에 밀려 현에서는 신속히 비밀회의의 존재를 확인하는 조사를 시작했지만, 그러한 모임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현민건강조사 관리 검토 위원회가 회의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사전 준비모임이었을 뿐이라고 보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보고 발표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고 이후, 숨겨졌던 있었던 사실이 잇달아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그 때마다 우리들은 화를 참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낙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나 후쿠시마현 당국, 토쿄전력으로부터 이 사실에 대한 성실한 태도는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야마시타 교수 등에 의한 검사나 조사가 우리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체, 데이터, 그 모든 것이 연구 재료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원폭상해 조사위원회(ABCC)가 히로시마에서 대규모 역학조사를 한 후 모든 데이터를 본국에 가져가서는, 피폭자의 치료에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 것과 똑같습니다.


 


후쿠시마현의 상황


2011년 12월16일, 노다 요시히코 수상은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수습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 어떤 원자로도 내부가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르며, 강제로 피난을 하게 된 현민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거기다가 방사성 물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게 있는 있는데도 불구하고 …. 그 선언 이후, 후쿠시마현의 키워드는 ‘유대·부흥·오염제거·배상·건강관리’입니다. 오염제거작업에 5000억엔, 방사선의료 센터 건설에 100억엔, 그리고 유전자검사에 12억엔, 이밖에도 고액의 국가 예산이 후쿠시마현의 부흥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예산 어디에도 어린아이들을 피폭으로부터 지키는 ‘보양’을 위한 예산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후쿠시마현은 아이들을 현 밖의 방사능이 없는 지역에 보내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만약 아이들을 보양을 위해 현 밖으로 내보내면 현 스스로가 후쿠시마현의 오염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배상금도 발생하고, 지금도 계속되는 인구의 유출 상황이 더욱 확대되며 현민세도 줄어들고, 결국에는 현의 존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현민의 생명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경제부흥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고 직후로부터 그렇게나 많이 안심 안전을 계속 말하고 있으면서 왜 세계적인 최첨단 암치료를 하는 방사선의료 센터가 필요한 것일까요? 사고가 안 난다면, 인권문제로서 큰 논쟁이 될 유전자검사가 용인해도 된다는 것일까요? 18세 이하의 어린아이의 의료비가 전액 무료인 것은 왜일까요? 일본정부가 “지금 즉시 영향은 없지만, 암이나 백혈병, 혹은 다른 질병의 발병이나 심신의 장애가 예상된다” 식으로 생각한다면 앞뒤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발병을 막기 위해서 어린이들을 휴양하러 내보내지 않는 것일까요? 왜 신속하게 갑상선검사나 혈액검사, 심전도를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그것을 위한 국가 예산을 짜지 않는 것일까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지 않고서 후쿠시마의 부흥은 있을 리가 없다고, 날마다 우리들은 외치고 있습니다.


2012년 6월, ‘핵발전소사고 어린이재난피해자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것은, 피난하는 사람의 권리, 그리고 피난하지 않고 머무는 사람의 권리도 지키는 모든 핵발전소 재난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률입니다. 10월 중순, 이 법률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라고 제언하는 집회가 고오리야마시에서 열렸습니다. 제언할 기회를 가진 저는 대상 지역의 공기 중 방사선량 뿐만 아니라, 토양 속의 방사능 선량을 기준으로 그 시행을 판단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갑상선검사나 혈액검사, 심전 검사 등을 포함하는 어린이들의 정기검진 또한 요구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들 후쿠시마 현민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방사능 피폭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사고가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잊혀져가는 것입니다. 노다 수상의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수습 선언 이후, 언론에 의한 보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는 이미 끝난 사건이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핵발전소 사고가 또다시 일어난다면, 과연 우리들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요?


경계 구역이 된 오오쿠마마치에서 피난을 떠난 A씨는, 3월16일 새 집에 이사를 했습니다. 오오쿠마마치에 지은 집은 2년 동안 남편과 함께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설계한 집이었습니다. 땔나무 스토브에 태양광 발전, 그리고 우물이 있는 집. 마당에는 채소를 재배할 텃밭을 꾸리고 아이들도 낳아 기르면서 오오쿠마마치의 풍부한 자연과 이웃 공동체 속에서 살 인생 설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 집은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7.5킬로 떨어진 지점에 있었는데, 3월11일 당일에는 후쿠시마핵발전소에서 3킬로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전혀 연결되지 않자, 전화가 연결되는 곳까지 가보려고 밤 8시경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계속되는 피난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더불어서 35년 간 갚아야 하는 주택 융자금 지불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있을 임신과 출산을 고려해서 한시적 귀가조차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하룻밤이라도 새집에서 머물 생각은 없습니다. A씨는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오오쿠마마치와 같이 현외나 현내 시정촌에 피난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정해진 시기에 필요한 짐을 가지러 단시간 자택으로 돌아갑니다. 2011년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45리터의 비닐자루를 1장 받았습니다. 그 안에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물건을 집어넣고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오래 살아서 정든 내 집,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만 했던 내 집에 들어가서는 어느 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또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은지 정해야만 하는 슬픔, 유감스러움, 혼란을 상상해 보십시오. 단 45리터의 비닐 자루에 어떻게 중요한 물건을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경계 구역이 풀어진 미나미소마시 오다카구의 T씨는, 자기집에서 숙박은 아직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루 정도는 집에 가서 짐을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한여름 여기저기에서 번식한 곤충과 작은 동물들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자기 집은 이미 쥐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쥐의 시체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제거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아직 쓰레기 수집 차도 운행하지 않으므로 그 수와 악취는 더 심해져갈 뿐이었습니다. 정부는 ‘귀가가 가능한 지역’을 정해서, 돌아갈 것을 장려하고 있지만, 도대체 이 심각한 정부 관료들과 정치가들은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요? 이런 현실, 진실을 몸소 체험해봐야 하는 것은 우선 정부 관료와 정치가들인 것 아닙니까?


 방사능 고선량 지역에서 어린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피난해 온 엄마들은 “왜 내 집이 있는데도 살 수가 없는 것일까, 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져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하고 눈물을 흘리며 계속 묻습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정부가 다시 들어가 살아도 좋다고 한 지역이기 때문에, 현내에 피난해 있다 하더라도, 현이나 중앙정부, 토쿄전력에서 보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주택 대출과 아이즈와카마츠 주거를 위한 집세의 이중 지불 때문에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저축도 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합니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즈 지역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요? 아이즈 사람들은 ‘고통 비교하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계 구역에서 벗어나 피난을 떠나서는 집도 직장도 다 포기하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 비해, 우리들은 집도 직장도 있고 거기다 가족과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재난 피해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참아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마당에 나도 방사능 피해자라고 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후쿠시마 현은 크게 세 가지로 분단되고 있습니다. 피해가 큰 사람들이 “당신보다 우리들이 지금 더 힘들다” 고 말해버리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사람들 사이에 배상금의 차액이 발생하고, 서로 시기하게 되면 사람들은 더욱 분단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분단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요? 다름아닌 일본 정부입니다. 그럼 과연 무엇이 목적일까요? 핵발전소 재난 피해자들을 정보나 보조제도, 배상금 등으로 분단시키고 지치게 만들고, 사고를 정지시키며 결국엔 포기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사고를 모두 없었던 일로 하자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과 같은 일들이 미나마타병이 발생한 지역, 그리고 미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오키나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그 사실을 자신의 과제로서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작년 7월에 저는 보양 프로그램으로서 어린이와 어른 47명을 인솔하고 칸사이 지방 효고현에 다녀왔습니다. 오래간만에서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속에, 혼자 모래밭에 멈춰서 있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잠시 모래를 내려다보더니 얼굴을 들어 옆에 있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여기 모래는 만져도 돼?”라고.


모래밭은 원래 친구들과 놀고, 장난을 치고 또 싸우고는 화해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핵발전소 사고 이후, 모래나 나뭇잎, 길가의 자갈돌 등을 만지거나 줍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어린아이들은, 모래밭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네 살짜리 아이는, 내가 빨래를 밖에 말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크게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너희 집에서는 어떻게 빨래를 널고 있는데?”라고 물었습니다. 그아이는 “밖에는 나쁜 약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엄마는 집 안에 말리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 어린 아이들의 생활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체력 이 떨어지고 미각이 변해버리고 있는 것을 저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놀지 않는 어린이들이 쉽게 넘어지거나 체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또 내부 피폭을 막고 싶은 엄마들이 식품 재료를 제한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맛의 미각 체험을 할 기회가 적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후쿠시마의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갑자기 코피를 쏟고 눈 아래 다크 서클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구내염이 낫지 않고 설사도 계속합니다. 하지만 이런 증상들이 방사능의 영향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제가 최근에 들은 이야기인데 중학생이 다니는 학원에서 중학생의 신체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흰 셔츠를 코피로 새빨갛게 물들이는 아이. 학원 수업중에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가는 아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피곤해 자버리는 아이 등등.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이러한 일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중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야외 교정에서 활동을 하는 야구부나 축구부 아이들입니다. 되풀이하여 체내로 들어온 방사성 물질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이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제4장 18절


이것은 제가 좋아하는 성구입니다. 약혼식 때 남편에게 보낸 성서에다 기념으로 이 구절을 선택해 썼습니다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이 성구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서 도저히 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사고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신학이나 성서학적으로 틀릴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방사능‘을 첨가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 엄중하고도 슬픈 현실에 고개를 돌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도망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묻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으냐? 너는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라고 주님은 매일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너무나 어려운 판단을 재촉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아는 힘, 사물을 간파하는 힘을 익히고, 주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혼란스럽고 힘든 시대, 주께서 주신 생명을 끝까지 꿋꿋하게 살아냅시다. 그것이, 주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YWCA 채널 구독하기

새로운 소식을 카카오톡으로
빠르게 받아보려면?👇

YWCA 채널 추가 일주일 간 표시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