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누구를 위한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 확대인가?
병상 경쟁이 아니라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이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이다
최근 언론은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향후 6,500여 병상을 추가 공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은 앞다투어 병상을 늘리고 진료권을 확대하여 또 한 번 ‘몸집 키우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 정부는 의료개혁의 핵심 과제로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 ‘지역 필수의료 강화’, ‘일차의료 활성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수도권 환자 쏠림 완화’를 국민에게 약속해 왔다.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방향은 지역의료 강화인가, 수도권 대형병원 확대인가.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확장 계획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의료개혁의 방향과 정합성이 있는지 국민 앞에 설명되어야 한다.
병상을 늘리는 것이 곧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병상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체계의 불균형이다.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중증환자가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하며, 동네에서 믿고 찾을 주치의가 부족하고, 퇴원 후 회복과 돌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또다시 병상 확대 경쟁에 나선다면 의료인력은 더욱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지역의료기관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병상 확대가 단순히 개별 병원의 투자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병원 건립은 민간이 추진할 수 있지만 병상이 운영되는 순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병상 확대는 특정 병원의 경영 전략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할 공공정책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보건복지부는 병상수급관리계획을 통해 지역별 병상 공급을 관리하고 의료자원의 균형 배치를 책임지는 주무부처이다. 그럼에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병상 공급이 이어지고 있다면 현재의 병상 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과거 승인된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재 추진 중인 병상 확대를 정책적으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의료환경과 의료개혁의 방향이 바뀌었다면 정부 역시 병상 공급 정책의 타당성과 공공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한국YWCA연합회(회장 조은영)·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상임대표 유미화)·의료공동행동(상임대표 강희경)은 무엇보다 의료소비자가 원하는 의료개혁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묻고자 한다.
의료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대형병원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지역에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이다. 동네에서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일차의료, 응급의료의 신속한 대응, 소아·분만·외상 등 지역필수의료의 안정적인 제공, 만성질환 관리, 퇴원 후 재활과 방문의료,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제대로 작동하는 의료체계가 국민이 바라는 의료개혁이다.
이제 지방자치단체의 보건의료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대형병원 유치’ 공약은 더 이상 지역의료정책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형병원 유치는 눈에 보이는 성과일 수는 있지만, 시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정책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병원 유치 경쟁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의료정책을 경쟁해야 한다. 지역책임의료기관과 지역병원, 의원, 보건소, 돌봄체계를 연결하는 지역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하고, 일차의료와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한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지방정부의 역할이다.
특히 지역의 보건의료계획은 의료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의료소비자의 경험과 요구를 반영하여 수립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하나. 수도권 대형병원은 병상 확대 경쟁을 중단하고 국민 건강과 지역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우선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
하나. 보건복지부는 수도권 병상 확대가 의료개혁과 부합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하고 병상수급관리계획의 실효성을 전면 재검토하라.
하나. 정부는 병상 확대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필수의료와 일차의료 강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의료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
하나. 모든 지방자치단체장과 시·군·구 의원은 ‘대형병원 유치‘가 아닌 ‘지역주민의 건강권 보장‘을 중심으로 지역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라.
하나. 병상 공급과 지역보건의료계획 수립 과정에 의료소비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체계를 제도화하라.
의료는 병원의 규모를 키우는 경쟁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공공서비스이다. 병상이 많을수록 좋은 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어디에서나 필요한 의료를 적시에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의료가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의료소비자의 관점에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과 지역의료 회복, 일차의료 중심의 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해 나갈 것이다.
2026.07.14.
한국YWCA연합회 •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 의료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