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여성지위위원회(CSW,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는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의 전문 기능위원회로, 1946년 설립 이후 전 세계 여성들의 권리 증진과 성평등 달성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매년 3월, 뉴욕 UN 본부에서 10일간 열리는 이 회의는 전 세계 정부, 국제기구, 그리고 NGO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성인권 신장과 관련된 주요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여성 인권과 성평등 운동의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국제 무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올해로 69차를 맞은 CSW의 주요 주제는 ‘북경선언 30주년’이었다. 1995년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된 북경선언과 행동강령은 여성 인권 향상과 성평등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행동강령은 빈곤, 교육, 폭력, 여성의 건강, 경제 참여, 의사결정 등 12개 핵심 과제를 설정하고 세계 각국 정부가 이를 이행하도록 촉구해왔다. 올해 회의에서는 이 12개 과제의 이행 현황을 점검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와 새롭게 떠오른 과제들을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YWCA는 ECOSOC 협의지위를 보유한 NGO로서, 올해도 7명의 대표단을 파견해 다양한 회의와 행사에 참여하고, 한국YWCA의 활동과 목소리를 세계무대에서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참가를 통해 한국YWCA는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글로벌 여성운동의 흐름 속에서 한국YWCA의 역할과 과제를 고민해보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한국YWCA 대표단은 아래와 같다.
왼쪽부터 추은지 연합회 성평등간사, 이은영 제 2부회장, 박지인 대학·청년YWCA전국협의회 기획국장, 서다미 청년부회장, 조은영회장, 김륜희 대학·청년YWCA전국협의회 소통국장, 이예림 대학·청년YWCA전국협의회 회장
첫 번째로, 한국YWCA는 ‘기술매개 젠더기반폭력’을 주제로 병렬행사를 직접 기획·주관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캐나다, 세계YWCA의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해 각국의 현실과 대응 사례를 공유하는 국제적 연대의 장이 되었다. 행사는 박지인 대학청년YWCA전국협의회 기획국장의 발표로 시작됐다. 박 국장은 한국의 N번방 사건부터 최근 딥페이크 범죄까지, 한국 내 디지털 성범죄의 흐름과 변화 양상을 설명하고, 이러한 범죄가 젠더적 관점에서 얼마나 심각한 여성 인권 침해인지를 짚었다. 이어 한국YWCA가 진행해온 대응 활동과 캠페인 사례들을 소개하며,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기술과 법제도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YWCA의 Nanako Tojo 활동가는 일본 내 그루밍 범죄의 심각성을 전했다. 일본 청소년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지, 그루밍 범죄와 디지털 성폭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고, 일본YWCA가 ‘안전한 공간 만들기’와 인권 교육, 법제도 개선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알렸다.
이어 캐나다YWCA의 Amanda Arella 활동가는 캐나다 여성 청년들의 온라인 혐오 경험을 공유했다. 16-30세 여성의 44%가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와 함께, 캐나다YWCA의 대표 캠페인 #BLOCK_HATE 활동을 소개했다. ‘Digital Wellbeing(디지털 웰빙)’과 ‘Digital Allyship&Cultures of care(디지털 공간에서의 연대와 배려 문화), ’Policy Recommendation(정책제안)’을 주제로 한 현장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세계YWCA의 Dr. Suchi Gaur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세계적 관점과 각국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할 글로벌 여성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행사 마지막에는 참여자들이 각자 자신의 목소리와 상징을 깃발에 적어 함께 나누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현재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오는 것을 소개하며, 기술매개 젠더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한국YWCA 대표단은 다양한 부대행사와 병렬행사에 참여했다. 첫째 날에는 월드YWCA 주관 행사에서 각국 젊은 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뉴질랜드 YWCA, 룩셈부르크 정부와 유럽평의회가 공동 주관한 행사에서는 기술로 인한 여성폭력의 심각성과 대응 방안을 고민했다.

둘째 날에는 장관급 원탁회의에서 세계 각국의 정책을 들었고,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이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대응 정책을 발표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같은 날 저녁, 일본YWCA 대표단을 한국YWCA 대표단 숙소로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나누며 양국 청년 활동가들의 고민과 비전을 나누는 뜻 깊은 자리도 마련했다.


셋째 날 아침에는 세계YWCA 초청 조찬모임에 참석해 ‘라이즈업(Rise Up)’ 프로그램을 소개받고 세계 스카우트 연맹 등과 교류했다. 이어 팔레스타인 YWCA의 병렬행사에서 현지 여성들의 절박한 현실과 목소리를 들었고, 아시아 LBTQ+ 운동 현황을 공유하는 병렬행사도 참여해 보다 넓은 시야로 연대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넷째 날, 일본YWCA의 오키나와 미군기지 관련 병렬행사에서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겪는 미군에 의한 성폭력, 군사사고, 환경 파괴 등의 문제를 들었다.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는 일본YWCA의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저녁에는 세계YWCA와 북미YWCA들이 함께 주관한 리셉션에서 각국 YWCA 활동가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국제적 연대의 의미를 되새겼다.

다섯째 날에는 아시아·퍼시픽 YWCA 간담회에 참여해 아·태 지역 YWCA들과 긴밀한 교류의 시간을 가졌고, 미국 내 한인YWCA인 퀸즈YWCA를 방문해 활동을 공유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끈끈한 연대를 확인했다.


마지막 날인 토요일, 대표단은 뉴욕의 9.11 테러 메모리얼을 찾아 참사의 현장을 돌아보았다. 두 빌딩 자리에 만들어진 거대한 폭포와 깊은 구멍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상실의 공간이자 기억의 공간으로서,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아픔을 상징했다. 이러한 기억과 추모의 공간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깊은 울림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번 CSW69 참여는 한국YWCA 대표단에게 많은 성찰과 배움을 안겨주었다. 각국의 젊은 여성 활동가들이 자신과 조직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고, 국제사회 속에서 당당히 자리 잡는 모습은 큰 자극이 되었다. 우리 역시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목소리와 활동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가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앞으로도 한국YWCA는 세계YWCA와 함께 국제적 연대의 흐름 속에서 성평등과 여성 권리 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