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 ~ 1945
애국 계몽의 시대

1931년 최용신과 농촌계몽운동
김필례, 김활란, 유각경에 의하여 한국YWCA가 창립되었다.
동경 유학 중 세계 여성단체인 YWCA를 접한 김필례 선생과 이화학당의
김활란 선생, 그리고 중국 유학 중 YWCA 활동 을 하고 있던 유각경
선생이 신교육을 받은 지식인 여성들을 모아 한국YWCA를 탄생시켰다.
당시 조선여성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 아래 봉건사회 관습이라는 이중
억압을 받고 있었다.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기독여성단체의 조직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뜻을
모았다. 창립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한국YWCA는 계몽, 교육,
생활개선, 여권신장, 민족운동 등에 힘을 쏟았는데 초기에는
계몽사업과 생활개선운동에 주력했다. 공민학교를 운영하며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했으며 요리강습, 흰옷 염색하기, 부엌 및 화장실 개조 등
생활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YWCA는 여성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당시 여성들을 괴롭히던
조혼/공창제도 폐지운동과 축첩제도 반대운동을 펼쳤으며 민족의
경제를 위협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애국운동 차원에서
물산장려운동에도 앞장섰다.
YWCA가 펼친 이 같은 계몽, 교육운동은 농촌운동에서 심화되었다.
민족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농촌이 튼튼해져야 한다는 일념아래 농촌을
위한 각종활동을 전개하였다. 수원 샘골에 최용신 여사를 파견하여
전개한 농촌운동은 그 시대 가장 대표적인 농촌운동이 되었다. 이렇듯
활발하게 전개되던 YWCA활동은 일제 말기에 이르러 탄압이 극심해져서
더 이상 활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천황신민화정책을
내세우며 특히 기독교를 탄압 하였는데 결국 조선YWCA도 1938년
일본YWCA에 소속되었다가 1942 년 끝내 문을 닫았던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1946 ~ 1962
전후 재건과 재도약의 시대

1962년 수재민 돕기 봉사활동
해방과 함께 안으로는 연합회 조직을 다지고, 밖으로는 세계YWCA
정회원으로 승인을 받는 등 굳건한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런 와중에 1947년 박에스더 선생이 한국YWCA에 파견됨으로써 더 큰
발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다시 혼란을 가져왔다. 피난지인
부산에서 YWCA는 밀려드는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주력하기로
하고 우유죽을 끓여 배급하고, 무의탁 소녀들 에게 농업, 원예, 축산,
가내수공업 기술을, 전쟁미망인들에게 양재, 편물 기술을 전수하여
생존능력을 가지도록 도왔다.
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YWCA활동도 날로 발전해 나갔다.
각 지역에서 회원YWCA가 설립, 확장되었고 회관도 마련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박에스더 선생의 영향으로 지도력이 계속 훈련 되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지도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김현자, 김봉화
두 분을 미국에 파견하여 훈련시켰다. 대학생과 Y-틴을 분리시켜
학생운동을 활성화시켰고 새로운 프로그램들의 개발로 학생활동을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발전시켰다. 당시 지도력이 크게 요청되던 사회에서
YWCA는 여성지도력을 배출해 내는 중요한 기지가 되었다.
또한 여성으로 하여금 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도록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한국여성의 사회참여를
불러일으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민법상에 있어서 여권향상을 위한 노력이었다.
1957년 <여성과 친족상속법>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해 널리 배부하였으며
혼인신고 강조운동을 펼쳤으며 1962년 친족상속법 개정과 가사재판소
설치 주장 건의문을 제출하면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 향상을 위한
몸짓을 멈추지 않았다.
'축첩자에게 투표하지 말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와 강연을 벌이고
부정 축재자 및 축첩자 축출운동을 전개했다.
그 열기는 국산품애용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4.19와 5.16 등으로 이어진 정치혼란 속에서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63 ~ 1972
여성인권보호 운동의 시대

근로여성을 위한 레크레이션 프로그램 개발
1960년대 한국사회의 급속한 산업화는 급속한 이농현상, 도시 빈곤층
형성 등 한국사회의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여성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Y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주목하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Y는 저임금, 피폐한 직업환경, 부당한 대우에 지친 여성근로자를 위한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 개발, 개인상담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한 사람의 여성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일깨웠다. 또한 근로여성 좌담회에서 기업주의 여성노동자에 대한 착취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근로여성의 복지향상과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근로여성의 실태를 세밀히 조사하고, 이러한 문제를
기업주와 공유하며,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특히 마산지역에
근로여성을 대상으로 건강관리, 상담실 운영 등 여성노동자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업을 시행하였는데, 근로자 200인 이상
업체에 상담원을 두도록 하여 근로기준법, 여성건강, 심리안정 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며 소외된 여성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 및 여성근로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낸 좋은 사례로
기록되었다.
산업화의 영향은 농촌지역사회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농촌지역 사업
또한 기존 내용의 변화를 요구했다. 도시-농촌간 빈부격차의 심화로
농촌근대화라는 새로운 흐름 아래 Y는 농촌지역의 발전이 산업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비인간적, 경제성장 중심이여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농촌개발사업을 시행하였다. 기존의 형식적이고 단기적이었던
도시-농촌간 자매결연 및 Y 회원들의 봉사활동, 모금활동에서 나아가,
농촌환경개선, 소득증대, 농촌지역 자치조직활동 촉진 등 농촌지역을
교육, 문화면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위해 농촌지역주민의
의식계발을 증진시키는 측면에도 힘썼다.
1970년 사회정의실현을 선포한 Y는 적극적으로 소외계층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현실을 체득하며, 지역사회에 대한 바른 인식과
주민의 자조적 역할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실행에 옮겼다. 대학생
회원조직은 도시빈민층 및 농촌지역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실질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및 주민자치활동을
실시하였다. 또한 도시지역 저소득 계층 및 농촌지역을 위한 유치원 및
탁아소 운영 등 보육서비스 제공, 여성의 의식과 역할을 바꾸는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여성들이 마음놓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역간 격차, 도시와 농촌간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하였다.
도시 및 농촌지역의 근로여성을 대상으로 야간학교를 개설하여
정규과정에 진학하지 못한 여성에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산업화에
의해 소득수준이 높아진 중산층의 형성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건설적인 여가활동문화가 없는 상태에서 도박, 사치, 무분별한 소비의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문제에 주목한 Y는 중산층
여성들의 취미와 자질을 살려 가정,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조직적인 클럽활동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가정 및
지역사회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의 자각을 일깨우는
교육으로부터, 요리/꽃꽃이/합창단 등 취미활동,
가족계획/식생활개선/아동교육/위생/건강관련 등의 강좌 등 서울 Y를
중심으로 하여 주부들의 클럽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정치,
경제 및 각종 사회문제 등 여성의 일상생활을 정치경제와 관련시킨
강의를 통하여 여성의 의식변화와 시대상황의 이해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클럽의 자치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러한 클럽운동은 향후 여성/소비자/환경/통일 운동
등 건강한 한국사회를 만들어 가기위한 근간에 여성의 힘을 발휘하는데
큰 토양이 되었다.
소비자보호운동은 Y의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또 하나의 실천이었다.
Y의 소비자 운동은 소비의 주체는 여성이며 소비자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일깨워주고,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생산보다 소비자인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는 소비자운동의 효시였다. 경제발전이 제일의 과제로
대두되면서 '생산자의 이익에 희생될 밖에 없는 소비자' 가 당연시
되는 사회를 경계하며, 소비자의 정의, 권리 등을 주창하고 실제
구매활동에서 벌어진 피해사례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소비자
계몽활동 및 제품 생산/유통/제품 분석 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소비자
권익보호 운동을 시행하였으며, 각 여성단체 대표들을 초청하여
소비자보호위원회를 발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독립된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조직한 Y는 소비자의 주체적인 법적 권리를
확보하면서, 계몽과 교육을 병행하고, 소비자 피해 및 제품 테스트
사례를 과학적 근거로서 뒷받침 하는데 노력하며, 이러한 사례를 전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화 하고, 정부의 정책차원에서 소비자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등 소비자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공헌하였다.
1973 ~ 1979
여성의 능력을 사회정의 실현에

1975년 여성노동자 근로조건개선운동
창립50년을 넘어선 한국YWCA는 반백년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보다
발전적으로 운동을 모색하고자 노력하였다. 범여성단체운동 차원에서
가족법 개정운동을 전개하고 소비자운동을 주도적으로 움직여갔으며
세계YWCA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 및 의식향상과 여성들의
직업개발에 힘을 쏟아 냈다.
1950년대부터 전개해온 가족법 개정운동을 보다 심화시켜 범여성단체
운동으로 확장하면서 지속적인 강연회를 통해 의식 확산을 시켰으며 수
차례의 건의문을 제출했다. 소비자운동 또한 활기를 띠고 전개되었는데
서울의 경우 상설소비자고발센터를 운영하면서 시민들의 발이 되고자
노력했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인권운동이라는 신념으로 소비자
전국대회를 가졌으며 강력한 압력단체로서의 기능을 다했다. 특히
1974년 인천 공해 유발 공장 설립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설립을 취소시
키는 성과를 거둠으로 환경운동의 삭을 틔우기 시작했다.
한편 여성노동자들의 차후개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들을 위해 상담활동과 직업훈련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중등교육과
정을 설치하였다. 대학YWCA를 중심으로 노동교실과 빈민지역 여성교실
등을 통해 사회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버스안내원의 인권옹호를 도모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 하였고
1977년에는 남영나이론 사장 면담 통해 노사협상을 중재했으며
1978년에는 동일방직 노사협상과정에 동참, 해고노동자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여성들을 위한 타일,
도배, 페인트 등 새로운 직업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직종과 직업에 대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변화시켰다.
또 1977년 파출부 교육교재 발간하여 팔출부 훈련을 전문적으로 실시해
회원 규모를 확장시켰다. 한편 이런 노력들은 그 성과여부를 떠나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낮은 자에게 접근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1980 ~ 1985
평화와 정의의 일꾼으로

1982년 창립 60주년 기념세미나 ‘한국의 자원봉사’
광주민중항쟁과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한국YWCA는 오랜전통을
바탕으로 소외된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개선 직종 개발과
직업무료상담활동, 장애인을 위한 복지운동을 전개한 시기였다.
외부적으로는 한국 여성운동의 세계적 수준으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구축했다는 점, 새롭게 등장한 진보적인 여성단체들 속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YWCA가 도전을 받으면서 새롭게 연대의 틀을 형성해
나아갔다.
특히 농촌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생활이 보다 윤택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지역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시설에 주목하여 방앗간,
목욕탕, 구판장 등을 만드는 일을 통해 여성의 직업 타일, 도배,
페인트, 감귤전정(제주)까지 창출하면서 지역 사업으로 공동협력의
길을 모색했다.
또한 농촌여성과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영양특별사업을 전개하며
식생활운동과 생활개선운동을 펼쳤다.
여성들의 다양한 직업개발 및 훈련과
무료직업상담실운영은 저소득층 여성들의 경제자립을 도모하고,
직업분야에서 남녀평등의식과 성별의 벽을 허무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기회의 평등, 고용의 평등을 위하여 여성의 능력을 개발하고,
제도개선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는데 25세 조기정년제 폐지운동을 꼽을
수 있다.
또 한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여성운동에 있어서 자원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장애인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자원봉사활동을 확대시켜 가고 장애인를 위한 편의시설
확충에 힘을 쏟았다.
공공시설에 장애인를 위한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제도화할
것을 건의하고 김포국제공항을 비롯한 몇몇 공공시설에 장애인를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성사시켰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과 함께
캠프를 하고 더불어 사는 훈련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일일
찻집 등을 열어 이들을 위한 기금 마련 프로그램들도 가졌다.
1986 ~ 1995
생명을 귀하게 삶을 새롭게

1994년 한민족여성대회 개최
급격히 성장한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의 격동기 속에서 기독청년여성회원
운동체로서 중도 화해자 역할을 수행하는 봉사 조직으로 내부 정체성을
정리한 한국YWCA는 활발한 연대운동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고유한
운동들을 전개해 갔다.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이때 YWCA 역시 고문근절 등을 촉구하고,
365일 철야기도운동을 펼치며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이 평화운동은
전쟁장난감 제작중지 요구, 북한여성과의 만남 추진 등 통일운동으로
이어져 두 차례(연변, 뉴욕)의 한민족여성대회를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1987년 고용평등법 통과 이후 시행된 시범직장탁아소
10개 중 6개를 YWCA가 설립하여 직장탁아의 모델을 창출하고,
지역탁아모를 훈련하여 탁아운동에 기여했다. 또 여성의
직업능력개발과 취업확대를 위해 일하는여성의집(현 여성인력개발센터)
사업을 개발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노동부 지원사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 동안 YWCA가 펼쳐왔던 여성직업 개발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현실 개혁을 주장하며 어린이 철학교육 등 인간
중심의 창조성 개발에 역점을 두는 대안교육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전인교육 차원에서 어린이 철학교육, 어린이 만화 모니터링 등을
실시했다.
또 합성세제 정량 쓰기, 수은전지 수거운동, 쓰레기 재활용방안 및
분리수거운동 등 환경운동을 벌였는데 YWCA가 독자 개발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받아쓰고, 다시쓰기)사업은 대표적인
전국민의 생활실천운동이라 할 수 있다. 생명운동차원으로 확대된
소비자운동은 양담배불매운동, 바른삶실천운동으로 이어졌다. 전국
회원 모두가 참여한 바른삶 실천운동은 절제와 분수에 맞는 생활을
강조하며 혼수 줄이기, 돈봉투 근절운동, 퇴폐향락 문화추방운동,
인신매매 추방운동으로 펼쳐졌다. 이것은 우리농산물먹기운동과
우루과이라운드 반대운동까지 이어져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YWCA 100주년 기념 YWCA세계대회를 성공리에
마침으로 한국Y 위상 정립은 물론 더욱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6 ~ 2002
세계와 함께 이웃과 함께

2001년 YWCA 국제자원활동연합캠프 개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전국의 회원들이 한 목소리를 냈던
바른삶 실천운동은 개인의 작은 변화가 사회변화를 이끌어낼수 있다는
자긍심을 우리들에게 안겨주었다. 더구나 IMF파동 이후 나라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공동체의식 회복은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이 이루어지는 세상 건설이라는 YWCA의 목적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던 통일운동은 구체적인 실천운동으로
확산되어져 갔다. 수해로 고통받는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를 보내고,
혹한으로 고생하는 북한동포에게 내복을 보냈으며, 통일이후 우리와
북한주민의 가교역할을 담당할 북한이탈 주민들을 위한 상담활동 및
취업훈련을 전개해가고 있다.
한편 매년 각 회원YWCA 모니터 회원들이 열성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사랑음식점 사업은 친환경음식점 업주들을
격려하고 음식물쓰레기의 양을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
녹색소비자운동이다. 이는 환경사랑 가족신문공모전으로 이어져
가정에서의 음식물쓰레기줄이기 실천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젊은 지도력의 양성과 세계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해 국제자원활동
연합캠프를 매년 개최하면서 외국의 대학생들과의 교류를 꾀하고
있으며 대학YWCA 회원운동의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만화공모전 사랑의 우체통, 또래상담활동, 청소년 사랑업소 선정 등을
통해 YWCA-틴 회원 운동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이루어졌던 사랑의 먹거리나누기운동은 계속 지속되면서
자원봉사활 성화를 이끌어냈으며 여성가장을 위한 취업훈련 및 알선은
여성취업 확대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다해내고 있다.
한국YWCA가 창립80주년을 맞은 2002년 "YWCA는 평화를 만드는
힘입니다."는 주제 아래 전국의 회원YWCA들은 북한바로알기 및
북한이탈주민 돕기를 펼쳐가고 있으며 여성의 정치서례화와 올바른
정치문화 형성에 앞장서 갈것이다. 100년을 향하여 건강한 여성이
만드는 사회를 위하여 한국Y는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80을
새롭게 가슴에 새기며 내일을 준비해가고 있다.
2003 ~ 2011
건강한 지역 사회와 세상을 만드는 생명사랑공동체운동 전개

2007년 다문화가정 요리경연대회를 펼쳤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해 실천하는 회원들과 함께
지역사회를 변화시 키는 생명사랑공동체운동을 전개하였다.
생명사랑공동체운동은 현 시대의 성장 위기, 공동체 위기, 생명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과 가족, 지역사회의 건강 함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이 생명과 보살핌의 윤리를 통 해 YWCA의
공동체운동을 회복하고, 나아가 건강한 지역사회와 세상을 만드는
운동이다.
연합회를 비롯한 55개 회원YWCA는 각 지역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주제의 소그룹 공동체운동을 전개하였다. 무엇보다 땅과
생명을 살리는 지역사회로의 변화를 위해 유용한 미생물(EM) 활용을
통한 건강한 생태환경 만 들기 운동, 친환경 먹거리운동 전개는 물론,
생활협동조합을 조직하였다.
2000년대 이후 국제결혼을 통한 결혼이민여성의 국내 유입이
증가하면서 이민 초기의 결혼이민여성의 정착과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한 국YWCA는 기업이나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결혼이민여성과 함께 하는 한하늘 한땅 사업’, 다문화여성 출산지원
사업 등 결혼이민여성의 한국정착을 위한 언어, 문화교육 등의
학습지원, 출산지원, 고국방문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더불어 결혼이민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적합 직종 개발과
직업훈련을 통한 취•창업 지원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관련 부처가
다문화여성 정책을 입안하 는 근거자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국사회의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한 남녀간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성평등을 위한 활동과 각종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엇보다도
호주제폐지를 위한 전국적인 연대활동을 전개한 결과, 2005년 3월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 냈다.
한국여성뿐만 아니라 세계빈곤국가 여성을 위한 ‘빈곤국가 여성돕기
모금 운동, 빈곤국가의 여성지도자 개발 및 훈련 프로그램, 공정무역을
통한 경제활동 지원, 아시아 빈곤여성 영양제보네기 등의 활동을 통해
여성인권 활동영역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뷱한어린이돕기 모금과 분유전달은 인권운동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계 구축을 위한 평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이처럼 한국YWCA의 국가와 인종을 넘나드는 연대와 활동의 저변에는
YWCA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의 바람, 세상을 살리는 여성’이
되어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자는
생명사랑공동체운동의 가치가 발현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선도사업은 보건복지가족부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의 괜찮은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달성하기 위하여
실시한 사업이다. 설립 초기부터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
참여를 위해 전개해 온 한국 YWCA의 능력과 역량을 인정받아
사회서비스 선도사업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이를 통해 '돌봄과살림‘이라는 YWCA 도우미 서비스 브랜드는 물론,
교육체계 및 교재개발, 표준업무 매뉴얼 및 서비스 제공시스템 체계화
등의 통합관리스스템 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한국YWCA는
회원운동체로서 회원공동체 활동이 정체성 의 근간을 이루는데
프랜차이즈 방식의 성과를 내야하는 선도사업 방향에 대한 반론이
제기돼, 2년여 만에 반납하였다.
한국YWCA는 2003년 한국씨티은행과 전개한 한국여성지도자상, 청소년
경제리더십 캠프, 씽크머니, 석세스 프로그램 등의 협력사업을
시작으로 농협과의 굿모닝 미인카드, 롯데홈쇼핑의 결혼이민여성
지원사업, 외환은행과의 YWCA 지구 시민활동가 ‘도스뜨’ 파견 사업은
물론 알파문구, 모두투어 등 다수 기업의 사회 공헌을 한국YWCA의
프로그램으로 연계하여 기업과 시민단체의 상생모델을 만들어 귀추를
모으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약 90년간 법적지위가 없는 임의단체로 활동하던
한국YWCA연합회가 2011년 1월 25일 법인설립허가를 받아 ‘사단법인
한국YWCA연합회’가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YWCA는 유지법인으로서의
기능을 갖는 (사)한국YWCA연합회 후원회, 복지법인 YWCA복지사업단과
함께 3개의 법인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역 할을 상호보완하는 가운데
전문 운동 단체로서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게 되었다.
2012 ~ 현재
100년을 향해 탈핵생명, 성평등운동 전개

2018년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 행진 개최
한국YWCA는 국내 최대, 최고의 여성단체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YWCA 회원이 한 자리에 모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YWCA 비전을 나누기
위하 여 ‘한국YWCA 창립 90주년 기념 전국회원대회’를 개최하였다.
전국 53개 지역 회원YWCA의 10만 회원들과 함께 YWCA 목적인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 창조질 서를 보전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대적 변화
속에서 YWCA의 조직 성장을 위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시민운동으로서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연구 작업을 수행하는
등,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수행했다. 이러한 노력 은
시민운동의 이슈에 지역 현장을 접목시키는 이슈 선정의 변화를
비롯하여 구 조의 변화, 외부 단체와의 적극적인 연대활동, 지역현장의
확대 등 다양한 방식 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핵발전소 에 의한 전기생산을 끝내고 에너지전환사회를 꿈꾸는
탈핵생명운동을 전개하였 다. 한국YWCA는 지난 2013년부터 ‘어머니란
이름으로 탈핵을 외치다’는 기치 아래 YWCA 탈핵 불의날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방사능오염 먹을거리 감시와 일 본산 폐기물 수입중단
촉구,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운동과 ‘잘가라 핵발전소’ 100 만인
서명운동 등을 전개하여 부산시장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한국YWCA를
중심으로 한 탈핵운동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언이라는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도록, 권리, 책임, 의무를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성평등운동은 사회
전반의 실질적 성평등 실 현 기반 마련이 관건이다.
한국YWCA는 광역단위 성별영향분석평가 모니터링을 시작으로
남녀임금격차 인식 개선을 위한 ‘동일일금의 날’ 캠페인 등을
전개함으로써 정책과 제도를 정비 토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여 전히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운동과
전쟁 중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게 하고
다음 세대에 평화와 여성인권의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기림비’를 건립하 기 위한 준비 중이다.
남북 분단 70년이 넘었지만, 한반도의 긴장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통일 뿐만 아니라 분단 전의 북한YWCA 재건을
열망하는 YWCA 회원들의 마음은 식을 줄 모르고 남북간 대화와 교류,
긴장 완화와 평화를 향해 더 크게 타 오르고 있다. YWCA가 정한 평화의
해를 기해 남한을 가로지르는 걷기대회를 통 해 평화정신을 고취하자는
평화 순례가 한라산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
태백산, 설악산을 지나 2022년에 백두산에 다다를 예정이다. ‘길 위 의
평화학교’를 통해 평화통일 감수성과 열정을 기르고, 북한어린이돕기
분유전 달, 북한수해 지원, 코로나19 등의 전염병 방역을 위한
면마스크 등의 지원을 통 해 북한과 북한여성과 영유아, 아동의 삶을
돕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여성들과의 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은 지속될 예정이다.
청년운동은 YWCA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대학·청년들의 급격한 활동
축소로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대학·청년들YWCA가 2016년에 재건되어
현재 17개 지역 의 회원Y에서 다양하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대학청년YWCA는 군산 구도심에 서 게스트하우스&카페 소설여행이
주종목인 ‘와이랩컴퍼니를 설립해서 ‘로컬라 이즈 군산’이라는
청년창업과 혁신을 통해 지역의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시도 중 이다.
2012년부터 매년 총 6권의 한국YWCA 정론지, 『여·세』를 발간했다.
『여·세』 는 ‘여성이 살리는 세상’, ‘여성이 만드는 좋은 세상’,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하는 여성들의 세력’,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여세!’ 등의 의미로 한국YWCA의 목적인 ‘정의·평화·창조 질서의
보전’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해 기독여성들이 함께 나아 가야 할 바를
찾는 한국YWCA 정론지이다.
YWCA 100년 역사에서 견지해온 핵심가치인 ‘함께 행복한 세상’을
연극과 영화, 음악회 등의 문화적 컨텐츠로 만들기도 하였다.
도우미들의 애환을 그린 ‘사랑을 말하다’, 중국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한민족 그리고 조선족’, YWCA 불의날
탈핵캠페인을 다룬 ‘불의날, 생명을 말하다’ 등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평화순례 여정을 다룬 영화제작을 위해 95주년 한라산부터 100주년
백두산까지의 순례여정을 다룬 다큐영화가 제작 중에 있다.
‘희망나눔콘서트’와 ‘YANA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1922년
창립해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달려 온 YWCA 가치를 시민들과 나누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특히 “당신은 혼자가 아 닙니다”(You Are Not
Alone)의 영문 약자인 ‘YANA’는 그동안 여성, 청년.청소년, 아동,
이주여성, 북한이탈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온 YWCA
정신을 강조하고 우리 사회가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는데 노력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기업과 시민단체, 정부가 협력하는 상생모델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시민사회의 형성에 있어 YWCA 역할은 역사를 이어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YWCA 회원들이 꿈꾸는 ‘하나님나라 실현’이라는 공동체의 비전 실현을
위해 기 업의 사회 공헌을 유도하고, 정부가 제도로 정착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 이 운동이고 사회도 변화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국의 열악한 지역아동센 터의 화장실과 주방
시설개보수사업은 삼성생명보험과 YWCA•YMCA가 협력한 사업으로서
영⋅유아돌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공동체가 함께 키워야한 다는
인식을 확장한 사례이다. 또한 농어촌지역 사각지대의 영유아, 아동을
돌보 는 생명숲돌봄센터는 회원YWCA의 조직을 기반으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운영비를 지원하고, 지자체가 인건비를
보전하는 형태의 생명숲돌봄센터를 운영 중이다. 씨티은행과의 오랜
협력으로 형성된 경제교육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획 재정부가 지원하는
수도권경제교육센터를 운영 중이다.
한국YWCA는 과거를 돌아보고(Go Back), 오늘을 告白하고, 100년을
향해(Go 100) 나아가기 위해 시대가 요구하는 생명과 정의, 평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 동을 더욱 활기차게,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다. 생명의 바람으로 세상을 살리는 여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