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 초창기 자원 활동가
1922년 3월 27일, 4월 20일, 5월 4일 세차례에 걸쳐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에 앞장서서 활동했던 초창기 YWCA 자원
활동가들
*왼쪽 아래 두 번째부터 홍에스더, 김필례, 정신학교의 겐소,
호주선교사 맬라렌, 유각경, 김활란, 황에스더
일제 암흑기 조국 독립과 여성해방을 위해 횃불을 켠 기독 여성들
1922년 3월 27일, 4월 20일, 5월 4일 세차례에 걸쳐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에 앞장서서 활동했던 초창기 YWCA 자원
활동가들
*왼쪽 아래 두 번째부터 홍에스더, 김필례, 정신학교의 겐소,
호주선교사 맬라렌, 유각경, 김활란, 황에스더
당시 조선여성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 아래 봉건사회 관습이라는 이중 억압을 받고 있었다. 여성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조선에 반드시 YWCA를 세워야 한다는 결의로 1922년 6월 13일부터 12일간 서울 충정로 협성여자성경학원에서 제1회 조선여자기독교 청년회 하령회를 가졌다.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게 하며 온 인류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됨을 인정하게 하고 구세주이신 예수의 교훈을 자기생활에 실천하게 함으로써 평화와 정의의 사회를 건설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발기문으로 작성하고 1922년 3월 27일 제1차 발기회를 가졌다.
조선YWCA는 축첩, 조혼, 미신 등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공창제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운동을 펼쳤다.
여성들을 교육하기 위해 토론회와 강연회를 열어 민족의식과
여성의식을 심어주었다.
1924년 2월 부녀자 문맹퇴치를 위해 서울YWCA가 설립한
여성노동야학원은 남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직조공장,
고무공장 등에 다니는 가난한 여성들의 배움터였다.
*1931년 제4회 졸업생 (사진)
여성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YWCA회원들은 마을 속으로 직접 들어가 한글교육과 성서교육을 했다. 연합회가 수원 샘골에 최용신을 파견한 것은 1930년대 초반으로 그의 헌신적인 생애는 YWCA 농촌계몽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최용신 유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YWCA활동은 일제 말기에 이르러 탄압이 극심해져서 더 이상 활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천황신민화정책을 내세우며 특히 기독교를 탄압 하였는데 결국 조선YWCA도 1938년 일본YWCA에 소속되었다가 1942년에 끝내 문을 닫았던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해방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상처를 어루만진 돌봄의 손길
한국YWCA는 젊은 여성의 국제지도력을 양성하기 위해 전문직
간사에게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사진은 한국YWCA가 전문직 간사 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파견한 간사
김현자와 김봉화(1949)
해방과 함께 재건에 박차를 가하던 중 6.25전쟁을 맞은 YWCA 자원 활동가들은 부산으로 피난한 가운데서도 전쟁으로 인한 미망인과 고아 돕기를 시작하였다.
1950년대에는 결혼 후 아내들을 호적에 올리지 않아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거나 다른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이에 저항하지 못하는 예가
자주 발생했다.
한국YWCA의 이 포스터는 전국의 결혼한 여성들에게 경각심과 함께
혼인신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 박에스더의 영문 뉴스레터를
통해 세계YWCA와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도 보고되었다.
억압의 굴레를 떨치고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우뚝 선 두 발
도시여성의 복지사업 일환으로 1961년 서울 후암동에 문을 연 '소녀의 집'은 170평의 2층 규모로 50명의 기숙사생이 기거하면서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 꽃꽃이, 미용체조, 요리강습, 소창 등을 배웠으며 일어 회화반, 영어 회화반을 조직해서 공부하였다.
YWCA의 모든 행사에는 노래와 게임 등 소창 (휴식 시간)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는데, 특히 당시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근로여성들에게 새로운 활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다양하게 개발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근로여성들의 저임금과 복지, 위생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YWCA는 기업체 책임자와 좌담회를 개최하여 근로여성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여차장 1천명을 대상으로 숙소와
근로실태 조사를 실시하며 여론을 환기시키고 근로조건을 개선시켜
나갔다.
한국YWCA는 여성들의 힘으로 국내외적으로 기금을 모금하여 1967년
명동 1-1가에 새 회관을 건축하게 되었다.
한국YWCA 회관은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마련과 재정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파출부는 YWCA에서 처음 만들어서 사용하던 개념으로 당시
‘식모'로 불리며 한 가정에 속해서 지배당하던 여성들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귀가하는 직업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한 용어이다.
YWCA는 파출부의 통합적인 교육을 위해 ‘YWCA 파출부 교육 교재‘,
‘청소법과 세탁법’을 개발하여 돌봄노동의 전문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당시에는 남성중심의 호주승계 순위를 규정해 놓은 부계
혈통주의를 제도화한 호주제로 인해 성차별이 만연하고
이혼가족이나 미혼모 자녀들이 호적과 성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한국YWCA는 여성이 평등한 위치에서 사랑과 이해, 존경과 신뢰를
받는 명랑한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법을 개정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YWCA가 주축이 되어 1973년 4월 27일에 27개
여성단체가 연대하여 대한가족법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강연회를 가졌으며, YWCA는 1975년을 "가족법 개정의 해"로 정하고
국회의원에게 편지 1만장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1972년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간학교인 "평화교실"을
시작하여 YWCA 노동자교육은 인간으로써 존엄성과 평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의식 강화
*1974년에 개최된 노동조합간부교육 (사진)
YWCA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직종을 정리해 1976년 '여성의 새로운 직업-직업훈련소를
중심으로'란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YWCA의 여성직업개발사업은 그동안 "남자들이나 하는 일"로
간주되었던 도배, 타일, 페인트등 3개 분야를 새로운 훈련영역으로
선정하여 남성에 비해 4분의 1이었던 여성근로자 임금이 남성과
똑같아지는 결과를 나았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나를 넘어 ‘우리’를 보는 눈
국산품애용운동으로 시작한 YWCA 소비자운동은 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이후 80년대 들어서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고속성장에 따라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에 이르렀고 소비자의 힘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면서 소비자운동은 인권운동이라는 관점으로 다각적인 방법을 개발, 활용하여 결국 소비자보호법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회평화와 개인의 인권을 위협하는 고문근절을 위해 YWCA회원들은 국회의원 앞으로 건의문을 보내고 각종 심포지엄을 통해 사회여론을 환기시키는데 역점
생산직에 참여하는 여성취업인구가 늘어나고 결혼 후에도 사회활동을 계속하려는 의지가 강해짐으로써 ‘아이들에게는 보호받을 권리를, 엄마들에게는 일할 권리를’이라는 목표로 탁아사업을 전개하였다.
1977년 독산동에 설립된 서울YWCA의 아가방을 시작으로 인천, 성남, 부산, 마산, 광주, 전주 등에 이어 군산, 서울, 원주, 목포, 강릉, 거제, 대구 등전축에서 47개의 시점 탁아소를 운영하였다.
일하는 여성을 위해 시작된 YWCA시범탁아소는 오늘날의 YWCA 어린이집으로 이어져서 운영 중이다.
올바르지 않은 사회 구조와 관행에 일일이 참여하여 개선을 외쳐온
YWCA 운동은 바른 삶 실천운동을 전개하면서 합리적인 소비생활과
절제를 유도하여 인간의 가치와 능력, 참여가 존중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의식 개혁운동을 펼쳐갔다.
* 사진은 1991년 바람직한 결혼식과 결혼예복발표회.
YWCA의 다양한 직업훈련은 여성의 잠재된 능력을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1992년에 '단기직종의 여성직업훈련 실시방안'의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으며 이 연구결과에 의해 1993년에 노동부로부터 여성 직업훈련사업을 지원받아 서울, 광주, 부산YWCA에서 ‘일하는 여성의 집’을 열게 되었다.
YWCA에서 처음 시작된 아나바다 운동은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자원 재활용운동이다.
하나뿐인 지구를 오염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건전한
소비문화의 정착을 목표로 시작되었으며 전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생활실천운동이다.
세계 YWCA의 100주년을 맞아 1995년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Forward with Vision)’이라는 주제로 열려 90여 개국에서 대표 127명과 국내 관계자 1,000여명이 참석하였다.
1985년부터 북한YWCA 재건을 위해 기도와 모금활동을 펼쳐온
YWCA는 1993년 8월 15일에 12개 회원YWCA에서 1,500여명의 회원이
통일의 인간 띠잇기 행사에 참여하여 통일을 기원했다.
1996년부터는 북한어린이에게 분유 보내기 운동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서로 다름을 끌어안고 이웃과 함께 내딛는 힘찬 걸음
2001년 4월 3일, 일본 문무성에서 새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킨데 대해 YWCA는 전국 9만 회원의 이름으로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시정 및 채택저지를 위한 입장을 표명하고 4월 10일부터 회원YWCA와 공동으로 1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호주제도는 한국사회의 가부장 의식과 악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여성차별적 제도라는 비판 끝에 2005년도에
폐지되었다.
한국YWCA는 여성단체들과 연합하여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다.
생명사랑 공동체운동은 그동안 YWCA가 전개해 오던 생명운동을
실천 주체에 강조를 두고 전개한 종합적 생명운동이다.
2005년부터는 '현장 운동력 강화'라는 목표 아래 생명사랑
공동체운동의 실천 조직으로 소공동체인 민들레 조직을 만드는
일에 전국YWCA가 힘을 모았다.
한국YWCA는 2006년부터 청소년들이 돈에 대해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돈을 사용하는 습관을 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 금융인성교육 씽크머니 사업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국YWCA는 2004년부터 한국 사회에 공헌하는 여성의 지도력과 업적을 인정하고 알리기 위해 여성지도자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YWCA는 2004년부터 한국 사회에 공헌하는 여성의 지도력과 업적을 인정하고 알리기 위해 여성지도자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고 생명의 길로 다시 나아가기 위하여, Go Back, Go 100!
2017년 한국YWCA는 창립 95주년을 맞이하여 '회개와 고백의
기도'로 95주년 기념식을 진행하였다.
기념식은 지금의 역사가 있기까지 우리 모습을 회개하고
성찰하면서 내일을 향한 비전과 희망의 행진을 시작하자는
내용으로 진행됐으며 구체적인 회개의 제목들을 고백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환경파괴와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를 멈추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한국YWCA의 탈핵생명운동은 2015년에 노후한
고리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고 시민들의 인식개선에 큰 기여를
하였다.
전국에서 5년째 진행되고 있는 불의날 탈핵캠페인은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고 있는 YWCA의 대표적 주요
실천 운동이다.
한국YWCA는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 여성의 리더십 개발과 참여
확대, 여성폭력 예방과 성평등 의식 및 문화 확산을 위해 성평등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독여성주의 관점에서의 성차별 해소와 성평등문화 정착을 위해
인식 조사, 교재개발과 성평등 교육을 중점운동으로 펼치고 있다.
한국YWCA는 한반도 평화시대를 준비하여 북한에 대한 이해와 평화.통일 담론 확산을 위해 ‘길 위의 평화포럼’을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YWCA 한민족 여성평화순례: 한라에서 백두까지'는 한국YWCA 창립 95주년부터 100주년이 될 때까지 평화를 기원하면서 산을 등반하는 평화순례를 하고 있다. 또한 2015년부터 30여개 국내외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여성평화걷기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매년 여성평화걷기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