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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YWCA 제26회 오월Y시민포럼 2020.05.14

광주민중항쟁 때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가

 

광주YWCA가 5월 14일(목) 광주YWCA 강당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40주년 기념 제26회 오월Y시민포럼 및 박용준열사 추모예배를 드렸다. 박용준 열사는 광주YWCA신용협동조합 교도원으로 임용되어 성실히 일하다가, 1980년 5월 27일 새벽 끝까지 광주와 YWCA를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격으로 스물다섯 나이로 청춘을 마감했다. 광주YWCA는 박용준 열사를 추모하며 장학금을 제정해 5.18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오월Y시민포럼은 장헌권 목사(NCC인권위원장, 광주서정교회 담임, 시인)가 ‘광주민중항쟁 때 광주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가’를 주제로 강의했다. 이날 포럼을 요약해 싣는다.

 

광주민중항쟁은 이름 없는 열사들의 항쟁이다. 광주민중항쟁과 기독교 역할을 이야기하기 전 먼저 한국교회와 민주화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정교분리를 내세운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사회참여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해방 후 이승만정권이 기독교 정권처럼 되자 친정부적인 기독교가 되었다. 결국 4·19 혁명과 이승만정권이 무너지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등장하면서부터 한국교회는 사회참여를 조금씩 하게 된다. 특히 1972년 10월 27일 유신헌법으로 군사독재 장기집권체제가 시작되면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민주화운동사에서 개신교계의 민주화운동인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은 “개신교회가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 조직적,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된 촉발사건”이라고 했다. 1973년 4월 22일 남산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민주회복’, ‘언론자유’ 유인물을 배포하면서 반정부시위를 시도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으나 개신교 전반에 넓고도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1970년대 기독교의 민주화와 사회참여운동은 YH 사건으로 대미를 장식하면서 유신체제 종말의 서곡이 되었다. 유신체제의 붕괴의 전주곡이 부·마민중항쟁이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유신의 심장을 쏜다. 이어서 79년 11월 서울 YWCA에서 ‘위장 결혼식’ 시국집회를 통해서 즉각 민주 정부를 구성하라고 주장한다. 물론 광주에서도 11월 28일 기장 전남노회 주관으로 YWCA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원천봉쇄되면서 경찰과 충돌이 되었다. 19명 연행되고 구류를 살게 되었다. 사실 유신이 죽었지만 이어서 군사반란이 일어난다.

 

광주민중항쟁 때 광주기독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회퍼 목사의 미친 운전사 이론으로 두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하나는 미친 운전사를 더 이상 운전하지 않도록 시민군으로 적극 참여했던 부분과 미친 운전사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하여 도와주는 역할이다. 물론 본회퍼는 히틀러를 제거하는 암살 음모에 가담하여 결국 순교를 한다. 행동하는 신학자로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본회퍼의 사회윤리는 전자이지만 전체적인 상황에서는 후자도 필요함을 전제로 한 것이다.

 

먼저 후자로서 기독교의 역할이다. 바로 시민수습대책위원회다. 당시 조아라 회장을 비롯한 YMCA 이사 김천배 등과 함께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의논하고 실행했다. 또한 <호남선교> “13년 만에 처음 공개하는 광무민중항쟁 당시의 교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교회가 당시 군사정권하에서 폭도로 규정되었다. 삼엄한 계엄 하의 상황에서 광주시내교회와 전국교회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부단히 일어섰다. 계엄 사령부를 방문하고 폭도가 아님을 항의 발표를 요구했다. 광주기독교연합회(NCC)는 광주 5·18사태를 항쟁으로 규정짓고 81년부터 계속 5·18 기념예배를 주도했다.

 

5월 22일 광주시내 15개교파 2백여 교회에서 1백여 명의 목사 장로들이 제일장로교회(한완석목사 시무)에 참석해 광주시 기독교수습대책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계엄 분소장을 만나 ‘정확한 바른 보도를 할 것, 폭도라는 과격한 말 사용하지 말 것, 연행자를 석방할 것, 보복을 하지 말 것, 계엄군의 과도한 진압과정을 인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또한 매일 낮 12시 일제히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한국YWCA연합회와 전국 18개 지역 YWCA가 함께 했다.

 

무엇보다 광주의 의인들이 있다. 광주정신은 저항정신과 샬롬 평화의 정신이며, 대동정신 주먹밥 나눔과 섬김의 정신은 바로 예수정신으로 성서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가치관을 온 몸으로 실천한 사람으로 광주의 의인 가운데 필자는 세 사람을 생각한다. 호신대 문용동 전도사, 한신대 류동운 신학도 그리고 고아 출신인 박용준 열사다. 이들은 시대의 어둠을 온몸으로 맞서다가 숭고한 정신을 남기고 떠났다.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보내고 있다. 4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광주는 뜨거운 주제이며 세계사적으로 기억해야 될 지독한 그리움이다. 2020년 4월 27일 전두환은 광주 법정에 1년 만에 다시 섰다. 그는 유가족과 광주시민들에게 단 한마디 사죄의 말도 하지 않았다. 헬기사격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이처럼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다시 한번 한국교회 특히 광주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살았던 열사들처럼 현재진행형인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고통. 제주4·3항쟁, 광주민중항쟁, 세월호 등을 위하여 광주 여성들의 살림문화로 함께하는 일에 광주YWCA가 중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정리되지 않는 미완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광주의 영원한 슬로건은 ‘오월에서 통일’이다.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시편85편10-13절)를 기억하라! 오월의 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 들어라! 오월의 함성, 외쳐라! 평화의 노래.

 

꽃만 봐도 서러운 그날 -봄빛 가득찬 길가에/ 하늘의 쌀밥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오월 꽃잎들은/속잎 겉잎 섞어/꽃무덤으로 엎드려 있습니다// 하늘 닮은 영혼들이/주먹밥 얼싸안고/춤을 춥니다//하얀 가슴들이/ 눈 시리도록 쏟아지는 /싱그러움으로/새벽길 열어둡니다.///

 

  • ※ 이 글은 월간<한국YWCA> 5+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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