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청년정의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예레미야 31:13)
성서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 우리는 여기서 하나 더 ‘잃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세대’, 즉 우리의 청년들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스런 청년들이 갈 길을 잃었고, 자신을 잃었고, 또한 희망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지금의 20대는 가장 능력 있는 세대인 동시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인 것 같습니다. ‘88만원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 세대는 어려서 학원을 전전하며 경쟁을 배웠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등록금 빚이 쌓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청년실업의 벽에 부딪히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어렵게 취직을 해도, 절반이 비정규직입니다. 한참 돈 벌 나이가 되면 노인 부양을 위한 사회적 부담으로 자기 저축은 한 푼도 못하게 됩니다. 지금 기업들이 더 이상 일자리를 늘릴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상황인데도 우리 기성세대는 출구도 없는 캄캄한 무한 경쟁의 동굴 속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밀어 넣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동굴의 끝은 어디일까요?
마태복음 20장에는 유명한 포도밭 일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꾼들을 고용해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 주인은 오전 9시와 12시에 그리고 오후 3시쯤에 다시 일꾼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러고는 저녁에 하루 품삯을 주는데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일찍 시작해 긴 시간 일을 한 사람들이 불평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 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똑같은 임금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왜냐하면 그 임금은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의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생명의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자비의 정의입니다. 애정의 정의입니다.
저는 오늘날 “나중에 온 이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청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은 가장 늦게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 이 포도원에 합류한 세대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데나리온 주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 땅에서 생명의 기회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포도원 주인의 정의가 바로 ‘생명정의’요 또한 ‘청년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위로와 희망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절망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특히 청년과 노인을 ‘함께’ 위로하여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사랑스런 청년들을 친히 위로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의 빛이 있는 한 우리 청년들을 절대 절망할 수 없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멘.
<7월 YWCA월례아침기도회, 장윤재 목사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