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YWCA청소년 협의회, 8월 14일~20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려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의 만남인 한·일YWCA청소년협의회가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일본 히로시마에서 진행됐다.
한국YWCA에서는 대학Y, Y-틴 회원 11명과 한미미 연합회 청소년 위원장 등 총 15명이 참여해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자가 오직 일본인뿐인가’라는 주제로 지난 65년 동안 적법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일본인 외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피해와 고통을 연구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히로시마 순례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원폭의 피해상을 직접 살피고 양국 청소년들이 전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평화 운동 계획을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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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자는 단연 일본인뿐인가?
황수진 한국YWCA연합회 인턴
제13차 한·일YWCA 청소년 협의회가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됐다. 이번 해는 특별히 일본Y에서 진행하는 ‘히로시마 순례’ 프로그램을 함께 참여하게 됐는데, 한일YWCA 소속 청소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과 히로시마를 순례하는 기회도 마련되었다. 한국YWCA는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11명의 대학Y와 Y-틴 회원들 그리고 한미미 청소년위원회 위원장, 고의순 위원, 실무자 등 총15명이 참가한 이번 모임은 ‘원폭 피해자는 단지 일본인뿐인가?’ 라는 주제로 전쟁 당시 재일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삶과 역사의 내용을 다뤘다.
이를 위해 참가자 전원이 사전 모임을 갖고 협의회에서의 발표할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했다. 7월 19일 연합회에서의 1차 기획회의에서 홍승표 목사님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한일관계’ 특강을 시작으로, 7월 28일에서 29일까지 경상남도 합천에 위치한 원폭피해자복지회관 견학, 엄분연 원폭피해자의 간증, 사전 토론과 기획 마지막으로 일본 출발 하루 전인 8월 13일부터 14일까지 서울 방화동에 위치한 국제청소년센터 드림텔에서 마지막 발표 검토 협의까지 만반의 준비와 토론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는 일본에서의 여정을 더욱 알차고 의미있게 만들고자하는 참가자들의 노력이었다.
드디어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 숙소로 오니 실무자 뿐 아니라 일본YWCA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한국참가자들을 마중하러 동경에서부터 오셨다. 좋은 시설의 숙소에서 참가자들을 협의회가 시작되는 내일을 기대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협의회 첫날인 14일 아침 재일한인교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숙소 겸 회의장으로 돌아와 일본YWCA에서 온 19명의 청소년 참가자들과 함께 첫 협의회를 시작하였다. 먼저 일본YWCA의 청소년 대표들이 ‘재일한인교포 원폭 피해자’에 대해 발표했다. 한국YWCA 김보영 학생이 그동안 합천에서의 견학, 경험과 토론들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인 원폭피해자 실태와 현황, 직접 만났던 피폭자 어르신들의 간증을 토대로 발표를 했다. 양국의 발표를 바탕으로 조별로 나뉘어 첫 토론이자 첫 평화의 소통을 진행했다. 다음날 이어진 히로시마 순례에는 참가자 수는 116명으로 불어났다.
일본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중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이 원폭피해에 대해 공부하고 히로시마를 견학했다.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과 자료관, 니노시마 섬, 미야지마 세계유산 등을 둘러봤고 당시 목격자와 재일한국인의 증언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저녁에는 워크숍과 토론들을 통해 조별로 보고 느낀 내용들을 나눴다.
히로시마 순례가 끝나면서 한·일Y청소년 협의회 참가자들의 패션쇼를 시작으로 다시 협의회가 진행됐다. 일본과 한국이 전통의상과 현대의상들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알리고 교류했다. 그리고 마지막날,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존재하며 그동안 고통 받고 살아온 그들의 삶을 이제야 알았다며 눈물을 흘린 참가자들도 있었고, 의미 있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평화에 대해 토론하고 각자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것에 감명 받았다는 등의 참가 소감을 나눴다. 더불어 한·일YWCA 청소년협의회의 뜻깊은 나눔이 일본의 신문에 기사로 실리게 되어 참가자들에게 자부심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참가자들은 그동안 협의회를 통해 직접 체험한 ‘평화’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온 만큼 이번 협의회를 통해 받은 은혜를 지면이나마 한국YWCA 모든 회원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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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하지 말아라 미워하지 말아라
신보미
청주YWCA 대학Y 회원
‘말해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애들을 데리고 내가 무슨 얘길 하겠어.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사람들 모아놓고 뭘 어쩌라고“
할머니는 도착하자마자 우릴 둘러보시더니 간증을 거부했다. 순간 뜨끔했다. 나에게 원자폭탄과 피해자는 할머니 말씀처럼 그냥 이야기일 뿐이었다. 할머님을 모시고온 아주머니께선 할머니에게 간곡하게 간증을 부탁했다. 깊은 한숨을 시작으로 반세기나 지난 이야기가 시작됐다.
할머니는 뱃속에 임신을 한 채로 피폭당하셨다. 큰아이를 젖 먹이러 나갔다가 아이는 죽고 할머니만 살았다. 번쩍하는 빛이 일고 옷들이 타들어가며 순식간에 살들이 녹아내렸다. 안고 있던 아이가 떨어졌는데 어디 있는 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피를 닦으려하는데 뼈가 보였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목이 마르기만 했다. 갑자기 주위는 불바다로 변하고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검정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까만 비를 뒤집어쓰고 피칠을 한 채 강가로 모여들었다.
살점들이 뚝뚝 흘러내리고 눈알이 튀어나와 유령모습과 같았다. 강가에 쌓인 시체를 밟고 물을 마시려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시체들이 쌓였고 강물은 따뜻해졌다. 이곳이 지옥인지 지상인지 분간이 안됐다. 상상조차 못한 끔찍한 상황에서 가족들이 죽어갔다. 그 속에서 혼자 살아남았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피폭이후 할머니는 뱃속의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시장에 장사를 하러 나갔다. 일본인들은 할머니를 보며 욕을 했다. “너희 조선인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장사를 하고 있느냐.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도 살고 싶으냐.” 할머니는 일본에 의해 타국에 오게 됐고 일본 때문에 일어난 세계대전으로 피폭을 당했다. ‘너넨 왜 조선사람을 이유도 없이 죽이냐. 내 가족을 잃고 내 몸뚱이가 반병신이 됐다.’ 너무나 억울했다. 혀끝까지 이 말이 차올랐다고 한다. 그 억울함을 어찌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참았다. 여자로. 조선인으로. 어머니로 살아야했다. 방사선으로 평생을 아프기만한 아들을 데리고 발악하며 살았다. 공포스러운 시간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홀로 살아온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할머니의 삶처럼 굽이진 주름을 타고 주루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피폭 때 죽은 사람은 행운이라고 했다. 가슴을 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몸짓에 난 눈을 감고야 말았다. 늙은 할머니에게 사람들은 인터뷰를 요청했고 간증을 듣길 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단 한 번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전쟁이 끝났을까? 그리고 평화가 온 것일까? 할머니는 전쟁 이전이나 이후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말이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나온 일본YWCA 리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코를 훌쩍였다. ‘전쟁 속에 이런 삶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너무도 죄송합니다. 쓰미마셍. 쓰미마셍.’ 맑은 눈에 할머니의 눈물을 담고 한참을 울었다. ‘하아’ 깊게 숨을 내쉰 할머니의 입은 부르르 떨렸다.
눈물을 닦던 티슈를 주먹에 꼭 쥐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전쟁을 하지 말아라. 미워하지 말자. 너희는 서로 열심히 살아가라.’ 너무도 간절한 할머니의 모습에 눈물이 나고 간곡한 음성에 가슴께가 뜨끈해졌다. 진심으로 외치는 할머니의 평화가 참 따뜻했다. 흐느끼는 우리를 보며 할머니는 다시 눈물을 보이셨다. 그러곤 온화한 미소를 짓곤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셨다.
‘미워하지 말아라’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까. 두 손을 꼭 잡고 너희에게 희망을 본다고 하신 할머니의 목소리에 꿈을 가진다. 직접 부대끼며 느낀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보고 평화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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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8시 15분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 2학년 이유리
서울YWCA Y-틴 협의회 회장
처음으로 방문한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은 본관은 유품 및 피폭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시각적인 자료로 설명하고 있었다.
원자폭탄이 개발되어 투하되기까지에 관해 모형 및 영상과 사진 등으로 소개하고 현재의 핵의 상황 및 히로시마시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 관하여 알리고 있었다. 원자폭탄으로 인해 귀중한 많은 생명들을 잃게 되었는데 특히 우리 또래, 내 동생 또래아이들의 유품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무고하게 생명을 잃게 되었을까… 너무 불쌍하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 아이들에 비해서 나는 이렇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났고 이곳까지 발걸음을 인도하신 데에 그분의 계획을 알아내고 내 삶속에 적용하는 것이 나의 숙제로 남겨진 것 같았다.
전시품 중 눈에 들어온 것은 오전 8시 15분에 멈춰있는 시계였다. 오전 8시 15분… 이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일터로, 학교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폭심지로부터 2km이내에 있던 모든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불태워 버렸을 정도의 강렬한 열선과 폭풍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두 번 다시 이러한 참사를 되풀이해서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자 말아야겠다. 세계가 평화를 위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그들을 기리는 일일 것이다.
원자폭탄을 맞은 후 에 남겨진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인 원폭 돔을 보았다. 나는 돔의 둥그런 모양을 보고서 마치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자식을 감싸는 어머니의 등을 연상했다. 비록 뼈대만이 남아 있었지만 결코 볼품없고 앙상한 것이 아니라 그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한 부모님의 견고한 마음과 투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번 한·일YWCA 청소년 협의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과거에 잘못에 대하여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컸었는데 이번 교류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용서를 받은 것 같다며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일본YWCA의 참가자를 보면서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크리스찬이 되어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