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숙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 부소장
경제성장 환상과 그린워싱
작년에는 59일 장마로 기후위기 징후를 여실히 보여주더니 올해는 10월 이상 고온에 이어 급속한 한파로 가을이 사라져버렸다. 전세계가 기후 격변으로 밀을 비롯한 식량 생산에도 엄청난 차질이 예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위기감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도 더욱 중요시되고 우선시되는 것은 경제성장이다. 최근 텔레비전에 등장한 현대차의 ‘제너레이션원’ 광고는 앞으로 탄생할 미래세대를 위해 자신들의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가장 앞장서는 기업인 것처럼 ‘지구 구원’이라는 감동의 쓰나미를 연출했다. 기업이 탄소중립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데 칭찬을 해주어야 마땅하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대차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건설은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주했음을 자랑한다. 겉으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최첨단 기업으로 그린워싱을 하면서 뒤로는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시스템 속에서 탄소중립이고 뭐고 성장과 이윤만을 최우선시하는 이중적 모습 때문에 현대차는 해외언론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일개인의 실천만으로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지구 온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많은 사람들은 기후위기의 원인이 된 지금의 경제성장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K-그린뉴딜계획도, 탄소중립위원회의 시나리오도 모두 기후위기의 원인인 경제성장 시스템이 가져온 극심한 불평등과 부정의의 문제를 외면하고, 오직 과학기술과 자본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확산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전기차를 타고 태양광 에너지를 쓰며 스마트팜 채소를 먹는다고 해서 기후위기가 가져올 파국을 막고 그로 인한 삶의 고통이 해결될 수 있을까?
재난은 모두에게 닥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은 그 무게가 다르다. 이것은 이미 기후위기를 비롯한 재난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특히 선진국에서건 개발도상국에서건 가난한 여성들은 계급과 젠더 억압이 이중으로 작용해 재난으로 인한 삶의 고통이 심화된다.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야만 하는 여성들은 재난 상황에서 대피하기도 쉽지 않고 피난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남성 없이는 함부로 외출하고 이동할 수도 없는 극한 가부장사회에서 여성들은 재난에 속수무책이다. 기후위기로 사막화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가족을 돌보는 여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물과 땔감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서야 하는 소녀들은 그나마 가던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이동중에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사막화된 삶터에서 멀고 먼 길을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 소녀들
기후위기와 돌봄위기
환경단체 옥스팜의 『다보스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세계 억만장자 단 2,153명은 46억명 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고, 22명의 가장 부유한 남성들은 아프리카 여성 전체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15세 이상의 소녀와 여성들이 제공하는 무급 돌봄노동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면 최소한 연간 10조 8천억 달러에 이르고, 이는 글로벌 테크산업 규모의 3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은 당연히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가난한 나라이건 부유한 나라이건 ‘돌보는’ 일은,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취약함과 상호의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 필수적인 ‘돌봄’이 사라진다면, 사회도 경제도, 정치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문화적, 정서적 안정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 많은 나라가 경제성장과 이윤창출을 삶의 핵심 원리로 보편화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기후위기 양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또한 돌봄의 위기도 심화되었는데, 그것은 가난한 나라이건 부유한 나라이건 마찬가지이다. 돌봄은 언제나 여성이 담당해야 하는 무급노동이었으며 삶을 떠받치는 필요노동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폄하당해왔다. 그래서 돌봄노동은 언제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여성들을 비롯한 사회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이 떠맡는 노동이었다.
기후 위기로 인해 2025년까지 최대 24억명의 인구가 물 부족 지역에서 살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또한 식량 생산량을 감소시키고 질병을 증가시킬 것인데, 이러한 상황은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들과 많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노동 시간을 부담시키고 스트레스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돌봄’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돌봄이 위기 상황에 빠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여실히 경험하였다. 코로나로 문을 닫은 학교교육 때문에 생계뿐 아니라 가사와 자녀교육까지 다 부담해야 하는 패닉에 빠진 워킹맘들, 학교의 긴급돌봄 운영체계를 모두 떠맡은 돌봄교실 교사들, 방역으로 인해 해고되거나 노동시간이 제한된 방문요양보호사나 간병인들, 극단적 환경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 코로나 현장의 의료인들.
돌봄가치가 중시되는 사회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그 원인이 되는 경제성장 가치가 삶의 중심이 되고, 우리 삶의 토대가 되는 돌봄 가치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이 상황은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또 분노하게 만든다. 경제성장의 환상을 부추는 사회에서는 재난도, 질병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모두 ‘개인’의 문제이고 ‘자기책임’이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더 많은 부를 가지기 위해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 올라서고 경쟁력과 효율을 위해 플라스틱과 온갖 편리한 일회용품 사용은 당연시된다.
그나마 이루어져왔던 공동체의 돌봄도 공동체의 붕괴와 더불어 사라지고 곳곳의 공적 자원은 민영화와 효율화의 옷을 입고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공공성과 민주주의 가치는 위협받으며 돌봄은 결국 ‘자본’의 문제가 되고 ‘개인’의 무한 책임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은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기후위기의 피해를 더욱 증폭시키고, 또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는 시스템을 계속 유지시킨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탈성장’ 없이는 기후위기는 막을 수 없다. 더불어 ‘경제성장’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돌봄’의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된다. 옥스팜의 보고서는 “향후 10년간 가장 부유한 1%의 재산에 0.5%의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면 교육, 건강, 노인 돌봄 등의 분야에서 1억 1,700만 개의 새로운 돌봄 일자리를 창출하고 돌봄 부족을 줄이는 데 필요한 투자액을 감당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재생에너지로의 전환하여 탄소중립을 만드는 것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이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근본적이고도 지난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류가 살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꼭 가야만 할 길이고 그래서 ‘돌봄의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에 대한 수많은 탐색과 시도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K-컬처, K-방역을 비롯하여 높아지는 위상을 자랑하는 한국은 언제까지 ‘기후악당’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을 것인가. 이제는 정말 탄소중립을 넘어서 기후정의가 실현되고 돌봄가치가 중시되는 전환의 한국사회를 정말 절박하게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