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양현혜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
7월 23일(목) ‘근대 기독교사를 통해 보는 한반도의 기독교 역할’을 주제로 제2차 길위의 평화포럼’이 열렸다. 포럼 내용을 요약 정리해 싣는다.
통일 한반도를 위한 기독교의 역할을 찾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통해 우리가 어떤 모습의 기독교여야 할지, 독선과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우리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를 성찰함이 필요하다. 두 거대한 기독교의 사상을 살펴보고 과거의 시대를 넘어 통일 한반도의 통찰을 얻어보자.
![]() 한경직 |
![]() 함석헌 |
해방 직후 북한 개신교의 상황과 한경직
북한 개신교도들은 해방정국 하에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신의주에서는 공산당의 급속한 조직화에 대항하기 위해 윤하영, 한경직 목사가 중심이 되어 1945년 9월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조직하고 공산당에 대항했으며, 북한 내 개신교와 정권 사이의 충돌과정에서 많은 개신교인들이 월남하였다. 한경직 목사는 ‘피난민들을 위한 전도’를 목회방침으로 1945년 12월 베다니 교회를 창립하였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북한 장로교인들의 또 다시 대거 월남했고 전체 총대 수 188명 중 71명을 차지하며 사실상 교권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월남 장로교인들은 한국 개신교의 대세가 되었으며, 급성장의 배경에는 북장로교 선교부의 물심 양면 지원이 있었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 프린스톤 대학 석사 출신인 미국통 한경직 목사였다.
월남 후 한경직의 활동과 사회 사상
1945년 10월에 월남한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의 정치화를 강력히 요청하며 건국 운동에 들어섰다. 그는 “교회는 영적으로 완전히 자유일 것이며 간접적으로 국가의 정신적 기초가 될 것”을 주장하며 기독교에 대한 준국교적 종교의 특혜를 요구했다. 기독교 최우월주의에 근거한 종교적 신정 정치를 이상으로 함으로써, 기독교는 종교인 동시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였다.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 신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국민의 기독교화’와 ‘대공산주의 투쟁’을 구상하였다. 제주도 4.3항쟁에는 폭력적 우익행동대인 서북청년대를 투입하며, 기독교 신정 정치의 국가 건설 신념을 기독교적 윤리를 능가하는 최종적인 윤리로 대치했다. 기독교 사회 윤리, 제도 의식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채 모든 것을 기독교인의 양적 확산의 문제로 수렴해 버리는, 이 신정정치적 건국 이상은 전국민의 복음화와 친미=반공주의라는 축을 모든 정치적 판단의 척도로 하게 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지도력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예장 통합 교단에 국한되었고, 인간 존엄과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청년층을 품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청년들은 물었다.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이 교회의 안전을 확보하며 경제 개발과 반공과 친미를 주장하는 것인가. 독선적인 전투적 선교는 과연 기독교적인가 등등. 누구보다도 실망한 것은 영락교회 내의 5, 6천여 명의 대학생부 청년 학생들로 대학생부를 자진 해산해 버렸다.
한국 개신교 내에 한경직 목사의 청렴과 청빈이라는 기독교적 유산은 희미하지만, 교회의 양적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경제 개발과 친미·반공의 ‘기독교 한국’을 건설한다는 그의 사회 사상을 지지하고 계승하는 흐름은 여전히 건재하다.
함석헌의 통일에 관한 사유
함석헌은 한반도 분단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미소의 세력 다툼’이라는 외재적인 요인으로 보았으나 미·소의 세력 다툼을 보다 근원적으로 성찰해 그 다툼의 원인을 근대 국가의 도덕적 모순 즉 개인도덕과 국가도덕의 불일치로 보았다. 도덕이란 개인의 행위를 전체와 일치시키는 데 존립한다. 그런데 함석헌에 따르면 “그 전체는 늘 고정된 전체가 아니라 자꾸 자라가는 전체”로서 인간의 활동에 의해 열리는 것이며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체에도 역사가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전체가 자라온 역사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이제는 개인이 전체 인류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실현하려 하는 시대로, 국가는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역사인식이었다. 함석헌은 한반도 분단이 낡은 국가주의의 최정점인 미·소의 경쟁주의와 폭력주의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함석헌은 한반도의 통일은 인류 전체주의라는 새 시대를 개방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이 미·소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주의의 모순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그 극복 역시 근대 국가 체제를 극복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즉 함석헌은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을 ‘국민국가’에서 ‘인류 전체’로 전환되는 거대한 세계사적 전환과 맞물려 있는 사건으로 보았던 것이다.
한편 분단과 통일을 바라보던 함석헌의 사유는 외재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내재적인 측면에서 성찰하는 것이었다. 한민족의 자기상실과 자기망각이 다른 모든 현실적 수난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한 민족이 자기의 종교와 철학이 없다는 것은 ‘국민적 이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적 이상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참된 의미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나라가 공동의 이상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가 아니면 어떤 당파의 나라로 전락하고 만다. 남은 자본주의를, 북은 공산주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특정 당파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사사로운 권력 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국가주의를 탈각하여 전체인 하나, 즉 인류적 전체성을 개방해 가는 시대라고 본 함석헌은 국가주의를 초극할 주체가 다름 아닌 민족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민족은 ‘자기의식’을 가진 인격이고 주체이기 때문이다. 전체 속에서 자기를 이해하는 주체의 자기의식에는 사명의 자각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기의 할 일 곧 자기의 역사적 사명의 자각을 의미한다. 절대자를 향한 수직적 상승운동(종교)을 통해 자신을 변혁시키고, 그것을 현실의 역사에서 인류적 하나됨을 형성해 가는 수평운동(정치)을 통해 인류적 하나됨을 실현해갈 수 있다고 보았다.
한민족의 분단은 한편에서는 한국인의 책임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사적 필연이다. 오늘날의 시대는 전체가 자라 종래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시대이다. 그런데 기존의 알껍질이 갈라지고 깨지는 장소는 국가주의의 폭력과 경쟁이 초래한 분열적인 힘이 가장 크게 작동한 곳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고통의 자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고난이 집중하는 땅인 한반도는 따라서 고난의 수동성에 연대하는 사랑을 통해 참된 전체를 개방하라는 부름이 세계 그 어느 곳에서 보다 절박성을 띤다. 한민족의 세계사적 소명은 이 부름에 대해 응답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