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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글: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6월 29일 차별금지법안 국회에 발의되어
차별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가? 지난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못했던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입법 논의가 이제 정의당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안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6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김경호 선임기자, 한겨레)

차별금지법은 문자 그대로 차별을 금지한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 사회의 통합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기본법이기도 하다. 나와 다르게 생겼거나 다르게 살고 생각하기에 그를 배척하고 소외시키는 반목과 억압의 현실에 뛰어들어, 서로 다르기에 서로의 삶이 존엄하며 가치 있게 되는 것임을 모두에게 선언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통하여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고   우리 삶의 가치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도록 포용하고 수용하는 통합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이 곧 평등한 세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이 있음으로써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법의 세계에서 평등은 차별과 직결된다. 만약 같은 데도 다르게 다루거나 다른 데도 같게 다루면 그것은 부정의한 것이 된다. 그래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평등의 기본원칙이다. 예컨대, 세계인권선언이나 우리 헌법은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며 가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간다. 평등을 핑계로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생각, 하나의 취향만 강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다른 만큼 다른 생각, 다른 취향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이것이 평등의 본래적 모습이다. “다른 만큼 다르게 취급”함으로써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그 삶의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의미에서의 평등인 것이다. 이를 우리는 <합리적 차별>이라고 하며 평등 혹은 정의의 핵심내용으로 삼는다.

 

합리적 차별과 자의적 차별
이 합리적 차별은 달리 취급하는 이유가 설명가능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시각장애인인 직원을 위하여 회사가 확대기나 점자와 같은 편의를 제공하거나, 목사님을 기독교를 신앙하는 사람 중에서만 선발하는 것, 혹은 화장실을 성별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하도록 하는 것(물론 성중립적 화장실 설치도 필요하다)은, 비록 누군가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합리적이거나 사회일반의 법감정에 부합한다. 그래서 그것은 합리적 차별이며 차별금지법도 권장하는 평등한 조치가 된다.

 

반면, 다르지도 않은 데 다르게 취급하는 경우, 혹은 서로 다른데 그 다름을 부정하면서 똑같이 취급하는 경우는 잘못된 차별이다. 이를 우리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한다.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은 바로 이 자의적 차별이다.

 

예컨대, 10여 년 전 「미네르바」라는 경제비평가가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판단과 평론에 동조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고졸자임이 밝혀지면서 ‘가짜 미네르바’ 논쟁이 일어났다. 그가 쓴 글의 진정성이 학력 문제 하나 때문에 부정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마치 홍석천이 만든 음식을 두고 그가 동성애자이기에 맛이 있다 없다 판단하는 식이다. 이런 사태가 자의적 차별이다. 합리적인 근거도 없고, 자신의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 맘대로 잣대를 갖다 대어 이루어지는 차별인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이런 세세한 일상영역은 상식에 맡겨둘 뿐 별도로 규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차별이 가장 자주 일어나고 생활침해의 정도도 중대한 네 개의 차별금지영역만을 선정하여 그 영역에서의 자의적 차별만 금지한다.

 

즉, 직업의 자유와 함께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이라는 인권에 필수적인 ‘고용의 영역’, 인격형성과 사회생활수단의 획득을 위한 ‘교육영역’, 일상생활에 절실한 ‘재화·용역의 공급 및 이용의 영역’, 그리고 이 복지국가의 시대에 무엇보다 절실한 ‘행정서비스의 영역’ 등에 대해서만 자의적인 차별을 금지한다.

 

그래서 일부에서 과장하듯,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이나 동성애에 부정적인 내용의 방송을 송출하는 문제 등과 같은 것은 차별금지법의 적용대상에서 일단 제외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것은 방송콘텐츠의 “(제작·)공급·이용”에서의 차별이다. 방송콘텐츠의 내용은 일단 차별금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 영역에서 23개(정의당안) 또는 21개(국가인권위 시안)로 열거되는 차별금지사유에 의한 차별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그 차별이 인정되는 경우도 있는데, 차별대우의 목적이 정당하고, 차별의 기준과 방법이 그 목적달성을 위해 합리적이며, 차별의 정도는 최소한에 그치고 있으며, 차별로 인해 얻는 이익이 차별당하는 설움(손해)에 비해 현저하게 큰 경우에는 그 차별은 합리적 차별로서 정당한 것이 된다.

 

윤리와 상식에 따라 차별 없는 세상 살아갈 수 있어
이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은 되려 역차별과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별금지 사유가 스무 개가 넘어 다 기억할 수도 없고,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이 침해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너무도 취약하고 또 무성의하다. 우리 중에 형법 상의 범죄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 가면서 행동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냥 일반상식과 정의관념에 따라 살면 그게 형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삶을 사는 다른 사람에 대해 별다른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나와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윤리에 속하며, 대부분 그런 윤리와 상식에 따라 차별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더구나 이미 우리 법체계는 억울한 자가 없도록, 부당한 권리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수한 법규범과 법절차 그리고 법이론과 판례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도 제한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엄중히 구분되고, 정교분리의 국가에서 국가가 종교의 자유에 개입할 수 있는 범위와 종교가 정치나 입법의 과정에 개입해서는 아니 되는 범위는 명확하게 설정된다. 최근의 법이론동향이나 법원, 헌법재판소의 판결동향을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굳이 외면하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것은 그냥 다른 것일 따름이라는 점이다. 그 다른 점이 열등함이나 나쁨의 표지는 결코 되지 아니한다. 차별금지법은 이 당연한 상식을 다룬다. 편견과 차별 앞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다름 아닌 우리의 이웃임을 선언함으로써,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초석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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