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 웹진

평화협정, 여성평화운동이 이끌어갈 살림의 길

글: 서보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정전협정과 평화협정
지난 7월 27일은 한국전쟁의 포연이 멈춘 지 67돐이 되는 날이었다. 코로나19로, 긴 장마로 인해, 무엇보다 휴전선 일대 충돌이 없어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 보통 분쟁 이후 평화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는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우호관계를 수립하는 합의를 하게 된다. 전쟁 중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정전협정이고, 전쟁 중단을 포함하면서도 평화우호관계와 평화관리 방법 등을 담은 것이 평화협정이다.

 

한반도에서는 3년여 간의 전쟁을 중단하는데 교전집단들의 군 최고책임자들 사이에 정전협정을 맺었지만, 평화협정은 아직까지 체결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정전체제 하에서 한반도 구성원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평화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7월 27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전협정 기념행사에서 “우리의 … 핵억제력으로 하여 이 땅에 더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을 것”이라며 ‘핵보유국’을 자처했다. 그동안 북한은 핵개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추진된 것이고, 따라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중단하면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즉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은 한국전쟁의 완전 종식을 포함하지만, 위와 같은 거대 현안들이 함께 얽혀있어 체결이 쉽지 않다.

 

북한의 핵억제력 강화 및 조건부 비핵화 입장에 맞서 한국은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정책의 보호를 받으면서 방위력을 증강하고, 다른 한편 북한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감대 형성을 추진해왔다. 2007년 2차 남북정상선언과 2018년 판문점, 평양 공동선언 등에서 남북 정상은 평화체제을 구축한다는 데 공감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핵문제와 북미 대립으로 인해 평화체제는 논의에서 이행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평화협정은 분쟁 당사자들이 더 이상의 분쟁을 중단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형성해 우호협력관계를 추진한다는 공식 약속이자 그 실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전쟁은 물론 정전체제와 같은 불안한 평화를 안정적인 평화로 전환시키는 정치적‧법적 합의가 바로 평화협정이다. 물론 평화협정은 정치적 합의와 법적 합의에 따라 협정(agreement)과 조약(treaty)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평화협정은 종전 선언을 포함하기도 하고, 협정 체결 이전에 종전선언을 먼저 채택할 수도 있다. 또 평화협정은 대부분 분쟁종식, 관계정상화, 영토문제, 전쟁 피해문제 등이 포함되지만, 구체적인 분쟁의 성격에 따라 협정 내용은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평화협정은 보통 분쟁집단 최고지도자들 사이에 채택되지만 협정 체결 여부와 그 내용은 여론과 민간단체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민(民)의 평화협정’ 체결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럼 평화체제는 무엇을 말하는가? 평화체제는 분쟁 종식 이후 분쟁 당사자들이 다양한 교류협력을 전개하며 공존공영의 관계를 만들고 지속해나가는 커다란 행동양식을 말한다. 이때 평화협정은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정치적‧법적 합의이다.

 

평화체제 구성 요소
많은 사례들에서 보듯이 평화협정은 필요에 따라 여러 번 채택될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합의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럼 평화체제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로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적대의식의 화해의식으로의 전환, 인도적 지원과 협력, 경제협력, 사회문화교류, 평화문화‧교육 등 다양하다. 여기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은 정부 차원의 정책과제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민간이 함께 할 과제들이다. 평화체제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이념 등 여러 측면에서, 민과 관이 협력하며 평화를 뿌리내리고 키워나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평화체제는 이렇게 법‧제도와 같은 명시적 요소들과 의식‧관행과 같은 묵시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2019년부터 5년간 국방비를 270조 투입하기로 했는데 이는 연평균 7.5% 인상된 것으로서, 북핵문제의 장기화에 따른 군사전략 개선과 병사 봉급 인상 등이 주요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국방비 인상폭은 교육비 인상폭의 2.6배(2019년 기준)인데, 이는 평화체제 수립이 인간다운 삶의 필수조건임을 말해준다. 전쟁 위협이 있는데 평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의 양질의 교육을 희망하는 어머니들, 성차별을 정당화해온 군사문화 없는 참 민주사회에서 살아가려는 뭇 여성들이 평화운동을 선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느리지만 꾸준히 복지와 인권이 증진되어왔다. 그 결과 최근에는 한반도 문제를 민족, 이념, 통일,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세계, 삶, 평화, 젠더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성평화운동은 안보평화정책에 여성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325호’를 근거로 삼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도도하게 발전해온 민주‧인권‧여성운동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이제 여성평화운동은 주한미군의 성착취 및 환경오염 규탄은 물론 압박이 아닌 대화를 통한 비핵화 달성, 평화협정 체결, 부당한 방위비 인상 반대, 통일외교안보정책에서 문민통제 강화, 국회의원 및 정부 고위직에 여성 할당제 등을 주장하며 제도권에 강한 압박을 주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이 평화체제 수립 운동으로 수렴된다.

 

평화적 전환을 확립해나가는 단계
그럼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평화체제는 중단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뢰를 쌓아가는 ‘평화적 전환’ 단계와 본격적인 평화구축(peacebuiding) 단계로 이루어진다. 평화협정은 이 평화적 전환단계를 확립하고, 그 단계와 평화구축을 연결하는 가교이다. 평화협정 체결 운동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동시에 분쟁의 평화적 전환을 착실하게 하지 않고 정치적 접근으로만 할 경우 평화구축이 부실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틴과 아프가니스칸의 경우 평화협정이 채택됐지만 그것이 무시되고 분쟁이 계속되는 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정부 차원의 정책결정자만이 아니라 민간에서 감시와 비판이 있을 때 가능하다.

 

현재 한반도는 분쟁의 평화적 전환을 확립해나가는 단계에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비핵평화 협상을 재개하여 비핵화-안전보장-남북‧북미관계 개선을 함께 추진할 틀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미국 대선까지 협상이 본격화되기 어렵다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 혹은 축소, 남북‧북미 간 실무접촉,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평화협정에 앞서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한다는 공식 합의(일명 종전선언)을 하는 것도 추진할 만하다. 사실 남북은 몇 차례 정상회담 합의에서 종전에 합의했다고 볼 수 있어, 북한과 미국이 (거기에 한국이 함께)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설 수 있고, 긴장 조성이나 상대를 자극할 군사비 과대 증액이나 군사행동을 중단시키는 일에 연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평화운동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는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살림의 운동이다. 존재론적으로 여성, 어머니는 평화운동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여성평화운동이 포용적인 지도력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YWCA 채널 구독하기

새로운 소식을 카카오톡으로
빠르게 받아보려면?👇

YWCA 채널 추가 일주일 간 표시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