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한국YWCA연합회 간사)
2021년 여성주의 연합예배
2021년 5월 25일 화요일 늦은 8시, 한국YWCA연합회와 서울YWCA를 포함하여 17개 기독 여성 단체 및 기독교 단체가 함께 연합예배를 드렸다. 순서를 맡은 담당자들은 명동 향린교회에서 모여 예배를 진행하였고, 예배는 실시간으로 송출되어 많은 분들이 온라인에서 함께 예배를 참여했다.
한국 기독교 여성 단체들은 매년 강남역 여성혐오범죄를 기억하며 현장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하여 대면 예배가 어려워지자, 작년에는 온라인 캠페인, 올해는 온라인 예배로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번 예배의 주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였다. 이 주제는 한국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하고 불의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가사노동, 돌봄 노동, 실업, 성범죄 등으로 인해 계속해서 고통 받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이러한 고통을 심화시켰다. 이미 불평등한 노동의 조건 속에 있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가사 및 돌봄 노동의 짐을 지웠고, 일자리를 빼앗았으며, 온라인 성폭력은 더 극심해졌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노출된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은 집에 머물며 위협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 1년 한국 여성들의 우울증과 자살률은 크게 증가했다. 함께 예배를 준비한 단체들은 우리 주변의 여성들에게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기 위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시며, 마땅히 누려야 하는 각자의 양식을 주셨다. 여성들의 ‘일용할 양식’에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기쁨, 행복, 공평한 노동, 일자리, 안전, 안전한 공간, 정의, 평화……..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양식을 빼앗겨왔다. 이번 예배를 통해 여성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을 온전히 누리게 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예배에 이러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예배는 총 2부로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기도, 찬양, 말씀, 성찬 등의 순서로 예배가 진행되었고, 2부는 ‘우리들의 이야기 나눔’으로 사전에 참여자들에게 사연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위로의 시간으로 꾸려졌다. 모든 예배의 기도문은 각 참여 단위에서 각각 ‘코로나 시대 여성들의 생명, 죽음, 치유’, ‘채용 성차별’, ‘기후, 여성 생태주의적 관점’, ‘디지털 성폭력’ 등의 이야기가 충실히 담길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여성들의 주기–도문
1부 예배가 끝난 후, 성찬 순서에 포함되었던 ‘여성들의 주기-도문’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여성들의 주기-도문’은 주기도문이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시선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여성의 시선과 경험으로 주기도문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감리교지도력개발원 장근지님이 초안을 작성하였고, 2021년 여성주의 연합예배 공동체가 함께 수정하여 최종본을 작성하였다. 다음 페이지의 ‘여성들의 주기-도문’의 전문이다.
주기도문이 ‘주-기도문’이 아니라, ‘주기-도문’인 데에는 깊은 뜻이 있다. 이 기도문을 통해 여성들이 빼앗긴 것을 다시 되찾아 ‘돌려-주기’, 허락되지 않았던 영역에서 여성들에게 ‘권한-주기’,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기’ 등의 ‘주기(empowering)’의 역동적 실천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우리들의 이야기 나눔
2부 ‘우리들의 이야기 나눔’ 시간에는 다양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잃어버린 양식에 대한 이야기, 찾고 싶은 양식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된 사연이 주를 이루었는데, 노동 환경에서의 성차별, 우울, 차별 없는 예배 공동체에 대한 소망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진행자들은 각 사연에 대해 위로해주기, 대신 화내-주기, 기도문과 여성 시편 읽어-주기, 책 선물해-주기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비슷한 상황에 있는 모든 여성들이 아픔으로부터 회복되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기를 바랐다. 많은 사람들이 사연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실시간으로 채팅창에 남겨주었고, 이를 통해 비록 우리가 다른 공간에서 비대면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연 중 한 노랫말이 생각난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
고.” 예배의 자리에 함께한 모든 여성들, 모든 약자들을 위한 마음이었다. 한국YWCA의 모든 분들도 어느 자리에 있든지 간에,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2부의 마지막 인사말은 이러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손을잡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갑니다. 서로가 있기에 우리는 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서로 기독여민회 찬양팀의 특송을 초대했다. 우리는 함께 ‘손 잡고 함께 가세’를 부르며 모든 예배의 순서를 마쳤다.
느리지만, 함께 가는 예배
이번 예배에 함께했던 분들은 다른 예배와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올해 여성주의 연합예배는 느리지만, 함께 가는 예배였기 때문이다. 예배의 모든 순서에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있었다. 그 누구도 예배의 자리에서 배제되면 안 된다는, 준비 단체들의 굳은 의지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청어 중심의 예배와 행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번 예배는 너무 느리고, 호흡이 자주 끊기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양식을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서로의 양식을 지켜주며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경험’이라는 선물이 되었다.
생각보다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에 많은 지출이 필요했는데, 말에 숨을 불어넣는 ‘말숨헌금’으로 함께 예배를 만들어주신 분들이 있었다. 예배를 함께 준비한 단체들의 마음과 손길을 통해, 또 다양한 손길로 예배를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그 누구도 뒤로 하지 않는(No one behind) 예수 공동체를 경험했다.
우리의 이 경험이 각자의 단체, 한국 교회, 한국 사회로 확장되어 모두가 안전한 공동체,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여성들의 주기-도문
우리 하나님,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시는 분!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으니,
당신의 뜻에 우리의 삶이 기억되고
우리의 삶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오늘날 당신의 은총이 깃든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빼앗기지 않게 지켜주시고,
각자에게 필요한 양식을 욕심내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기 위해
죄 지은 자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알아
진실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 원합니다.
힘 있는 자의 넘어짐을 작은 자의 탓으로 돌리지 않게 하시고,
여성을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 유혹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뿌리 깊은 혐오와 차별 속에서 우리를 속히 구하여 주십시오.
차별 없는 나라와 주변으로부터의 권세, 평화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영원히 있습니다.
아멘.
여성들의 주기-도문은 2021년 여성주의 연합예배 공동체에서 여성의 시선과 경험을 반영하여 주기도문을 재해석한 기도문이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며 주님이 알려주신 주기도문이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번역돼 있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기도문의 본래 뜻과 다르게 왜곡되게 해석된 몇 구절을 올바르게 해석했다.
모든 여성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작은 자’는 아니지만 억눌린 자, 약자, 작은 자는 ‘여성의 얼굴’을 띠고 있기에, 여성의 경험과 관점에서 주기도문을 새롭게 살펴보는 일은 적지 않은 의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을 ‘주기-도문’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기도문이 여성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주기’(empowering)의 마음을 담았다. 빼앗긴 것을 다시 되찾아 ‘돌려-주기’,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는 영역에서 여성에게 ‘권한-주기’, 자신이 가진 것을 감사하며 더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기’ 등과 같은 여성주의적 역동과 실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