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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남성’ 당대표와 성차별주의

권수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기본소득당 신지혜 상임대표(왼쪽, @티스토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신지예 대표(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가운데, @오마이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오른쪽, @경남신문)

 

2021년 6월 11일, 이준석(36세) 전 최고위원이 국민의힘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원외정당으로까지 눈을 돌려보면, 20-30대 청년 당대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공동운영위원장 체제로 운영되는 녹색당은 2018년에 20대의 신지예를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선출했다. 21대 국회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의 신지혜 상임대표 또한 30대 여성이다. 이미 20-30대 청년 당대표가 존재했지만 이준석이 ‘첫’(번째가 아님에도) 청년 당대표의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이미 청년 당대표는 존재했다

이준석이 ‘청년’ 당대표 프레임과 이미지를 독점하게 된데는 한국의 공고화된 양당체제에 그 일차적 원인이 있다. 현재 한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정당은 49개이지만 선거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다. 두 개의 정당이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정치를 지배해왔고, 언론 또한 두 정당의 활동과 발언을 과도하게 전달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상상되는 선택지는 두 정당 중 하나로 고착화되었다. 두 정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려지지 않기에 다른 정당들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너무나 쉽게 삭제된다. 정권 획득이 가능한 제1야당이라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이준석 신임 당대표에게 지금과 같은 주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성별화된 정치체제이다. 수천 년 동안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었고, 지금도 남성의 영역이다. 남성이 정치의 기본값이고, 남성성이 정치의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정치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의심의 부담, 대표성에 대한 부담감, 어린애 취급, 과잉 감시”를 겪게 되며 “너무나 쉽게 바람직한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진다(너말 퓨워 2017).” 이미 2-3년 전에 청년‘여성’ 당대표가 등장했지만 이들 여성의 도전과 성취에 대해서는 ‘기대’나 ‘격려’보다는 ‘의심’과 ‘감시’, ‘우려’가 더 크게 작동하며, 평가 또한 박하게 작동한다. 이준석 당대표에 대한 관심과 열광은 한국의 청년정치 또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해주고 있다.

 

반페미니즘과 양가적 성차별주의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고, 대권주자로까지 주목을 받는 데 있어 그의 ‘반페미니즘’ 전략이 유효했다는 사실은 페미니즘이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년부터 진행된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 속에서 2030 여성들이 ‘소라넷,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폭행·살인 사건들), 게임계 사상검증, 채용 성차별, 현실정치에서 여성의 과소대표성’(손희정 2020)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드러냈지만 이를 성평등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움직임보다 기존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고, 그 질서로의 회귀를 바라는 백래시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백래시의 기저에는 뿌리 깊은 성차별주의(sexism)가 자리잡고 있다.

 

성차별주의,

가부장적 질서와 성별관계 정당화

성차별주의는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즉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것이 정당하다는 관념이다. 물론, 적대적 성차별주의(hostile sexism)는 여성을 남성의 권력을 빼앗는 존재로 보고, 남성의 것이었던 권력을 빼앗는 여성들에게 적대감을 갖고, 그러한 여성들에게 벌을 줘야 한다는 관념인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benevolent sexism)는 여성을 연약한 존재로 보며,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용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보호와 보살핌을 제공하는 등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관념이다. 두 개의 성차별주의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모두 가부장적인 질서와 종속적 성별관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성평등과 민주주의에 반한다.

 

이러한 양가적 성차별주의(ambivalent sexism)가 한국 시민들의 의식 속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성별과 연령을 교차해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온정적 성차별주의(benevolent sexism) 인식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모든 연령대에서 유사한 수준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마경희 외 2018; 이진옥 외 2020). 반면, 여성의 경우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적대적 성차별주의 인식이 모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의 온정적·적대적 성차별주의 점수는 남성보다 낮은 경향을 보이는데 20대에서 여성과 남성 간의 점수 차이가 가장 크다.

 

 

이러한 결과는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첫째, 여성을 보호나 보살핌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는 남성 내 세대 차이가 존재하지만 여성을 적대적 존재로 보는 인식에는 남성 내 세대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남성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반페미니즘을 외친 이준석에 대한 지지는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둘째, 성차별주의는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전통적인 성별규범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이들 여성에 의해서도 성차별주의가 공고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차별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20대 여성은 온정적·적대적 성차별주의를 가장 거부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성차별주의 타파는 20대 여성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2030 청년세대가 겪는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계급·계층, 학력, 장애 여부 등이 복합적으로 중첩돼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로 여성과 남성간 적대가 아닌 연대와 협력에 의해서 해결 가능하다. 20대 여성은 온정의 대상도 적대의 대상도 아니다.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20대 남성이 적대적 성차별주의 인식에서도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20대 남성 또한 성평등한 세계로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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