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 웹진

달리고, 싸우고, 이기는 여성들

오수경 청어람ARMC대표

 

매주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관심 가지고 지켜봤던 <슈퍼밴드 2>가 얼마 전 끝났다. 2019년에 처음 시작한 <슈퍼밴드>는 가요,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밴드를 결성하여 경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매회 개성 강한 밴드가 펼치는 수준 높은 무대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지난 시즌과 달리 여성 뮤지션‘도’ 참가할 수 있게 되어 더 다양한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슈퍼밴드 2>에서 여성 뮤지션들을 볼 수 있었던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2019년 방영될 당시 제작진은 오디션 참가 자격을 남성으로만 제한했다. 명백히 존재하는 여성 뮤지션을 배제한 시대에 뒤떨어진 차별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제작진이 원칙을 바꾸지는 않았다. 결국 남성 뮤지션들만 우정을 쌓고 실력을 겨루는 ‘슈퍼밴드’가 탄생했다. 2년 후인 올해 초 진행된 시즌2 오디션도 ‘남성 뮤지션’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다행히 꾸준한 문제제기 덕분에 제작진은 결국 “여성 뮤지션의 참가를 꾸준히 원했던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적극 검토해 반영했다”며 여성 뮤지션에게도 참가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여성 운동선수에 관한 높아진 관심

 

<슈퍼밴드>의 이런 시대착오적 행보와는 달리 최근 대중문화 대세는 여성들이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뜨거웠던 여름,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도 했던 도쿄 올림픽을 기억하는가. 여자 배구는 참가국 중 최약체 전력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4강까지 올랐고, 대중은 그런 여자 배구 선수들에 환호하며 응원했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는 양궁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 세 개를 획득하며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메달 권에 진입하지 못했더라도 여성 운동선수들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능도 마찬가지다. 박세리(골프), 곽민정(피겨), 김온아(핸드볼), 김은혜(농구), 남현희(펜싱), 정유인(수영), 한유미(배구) 등 그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여성 운동선수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의 E채널 예능 <노는 언니>들은 호평을 받으며 시즌2가 방영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여성 운동선수들을 ‘발견’하게 했다. 특히 <노는 언니> 속 여성 운동선수들이 함께 ‘모닝 갈비’를 뜯고, 목젖이 보이도록 신나게 웃고, 근육을 자랑하고 서로 부러워하는 걸 보고 있으면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매끈한 몸매 대신 튼튼한 허벅지와 날개 근육을 자랑하는 여성들이라니! 그들을 통해 동시에 여성의 몸을 다르게 사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간 여성의 몸은 ‘보여주는’ 의미로 존재했지만 이제는 보다 다양한 의미로 재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하게 재인식되는 여성의 몸

 

얼마 전 시즌1을 마친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또한 눈여겨볼 프로그램이다. 배우, 모델, 개그우먼으로 활동하는 여성 연예인들과 국가대표 선수의 가족 등이 6개의 팀을 구성해 축구 리그전을 펼치는 이 프로그램은 ‘축알못’인 나조차도 ‘골때녀’들의 경기를 챙겨보게 될 정도로 그들이 펼치는 승부의 세계는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다. 축구 경기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방송인으로만 알아왔던 이들이 축구를 알아가며 성장하고, 좌절하고,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루고, 마침내 성취하는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왜 이 재밌는 걸 여태 몰랐을까” ‘개벤저스’ 멤버 신봉선의 말처럼 <골 때리는 그녀들>의 시간은 그들이 축구의 재미를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여성들이 이토록 치열하게 운동하며 즐길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감각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강하고 아름다우며 깨끗한 승부의 세계

 

여성 스포츠 예능만큼 좋아하며 ‘본방 사수’하는 프로그램이 또 있다. 엠넷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다. <스우파>는 여성 댄스 크루 8팀이 서로 실력을 겨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그간 무대 뒤편을 담당하던 여성 댄서들이 스포트라이트와 환호를 받으며 저마다의 실력을 뽐내는 모습을 매회 감탄하며 보게 된다.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실력을 겨루지만, 결과에 매몰되지는 않는 승부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특별하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속성상 경쟁을 피할 수는 없겠으나 반드시 이겨야 하는 베틀에서도 이들은 상대 크루의 퍼포먼스에 환호하며 존중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만들 때도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는 동료들의 의견을 듣고 협력하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멋진 무대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또한 최선을 다하며 무대를 마음껏 누리되, 결과에는 깨끗하게 승복한다.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기는 게 미덕인 세계에서 <스우파> 크루들이 보여준 것은 강하고 아름다우며 깨끗한 승부의 세계였다. 무엇보다 그간 ‘백댄서’라 불리던 이들에게 ‘백’을 빼고 오롯이 ‘댄서’라는 이름을 부여한 계기가 된 게 의미 있었다. ‘백’을 빼니 그간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나와 우리의 이야기

 

남성들이 중심이 된 운동장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운동선수들이나 무대 뒤를 담당한 댄스 크루들의 세계가 대중문화의 메인 서사가 되었다는 점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여성들의 서사가 이제 전면에 드러날 때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모든 영역이 여성 중심일 수는 없겠으나 <슈퍼밴드>의 사례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한 존재를 넘어 하나의 세계를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것에는 리듬이 있어”

“난 단순히 도톰한 엉덩이만은 아니야. 나는 사고할 수 있는 뇌이고 입맛 다실만큼의 분홍빛 입으로 심오한 이야기도 할 수 있어. (중략) 나는 현명한 이들로부터 언제나 배울 준비가 되어 있고 나의 문화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지. 내 타고난 골격의 두꺼움은 과식해서 뚱뚱해진 것이 아니라 강한 여성인 거야.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것에는 리듬이 있어.” <스우파>에 출연하는 크루 중 ‘프라우드먼’이 미션 곡으로 선택한 Jill Scott <Womanifesto>의 노래 일부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 운동선수들에 주목하고, <슈퍼밴드>의 여성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골 때리는 그녀들>이나 <스우파>에서 여성들이 승부를 겨루는 걸 응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도톰한 엉덩이’와 같이 전시되고 소비되어왔던 몸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사유하며 재미와 건강을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단단한 일상을 살아가길 원한다. 또한 능동적으로 사고하며 서로 배우며 성장할 준비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길 원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사람에게 어떤 운동 하나가 삶의 중심 어딘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일이었다. 일상의 시간표가 달라졌고 사는 옷과 신발이 달라졌고 몸의 자세가 달라졌고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고 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다”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저자 김혼비의 말처럼 거의 모든 것의 ‘기본 값’이 남성으로 설정된 사회에서 여성이 그림자처럼 누군가를 보조하고 역할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제 스스로 빛나고, 서로를 빛낼 수 있는 주체적 존재로 존재하는 걸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가 설정한 전형적 이미지의 틀을 깨고 달리고, 싸우고, 이기기를 욕망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존재는 앞으로 올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빼앗긴 운동장과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드넓은 운동장과 무대에서 마음껏 달리고, 싸우고, 이기는 여성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길!

 

YWCA 채널 구독하기

새로운 소식을 카카오톡으로
빠르게 받아보려면?👇

YWCA 채널 추가 일주일 간 표시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