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정수(여성환경연대 이사)
시민사회의 불참과 항의 시위 속에서 5월 30일 P4G가 막을 내렸다. P4G 정상회의는 대륙별 12개 중견국들과 국제기구·기업들이 참여하여 2년마다 정상회의를 통해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 등 각국의 기후대응 의지를 결집하는 회의이다. 30일 ▷지구온도 상승 1.5도 이내 억제지향 ▷탈석탄을 향한 에너지 전환 가속화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선언문이 채택되었다.
한국정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자리
아직도 석탄화력발전으로 폐기될 경제회복 집중
그러나 불참을 선언했던 시민사회의 비난처럼 한국정부의 진전된 감축 목표나 계획은 끝내 없었다. 2050년까지 지구의 평균온도를 지금보다 1.5도 낮추지 못하면 파국을 맞는다는 사실은 여러 번 강조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NDC는 2017년 기준으로 2030년까지 24.4%를 감축한다는 것이고 최소 절반 이상 감축하겠다는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계획이다. 최소한 40%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관철해야 했음에도 그런 계획은 다시 먼 미래로 미뤄졌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비롯해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커서 에너지 소비 7위에 이른다. 게다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석탄화력발전이 전체 40.5%에 달하며 지금도 계속 짓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에너지믹스를 얘기하며 핵융합을 거론하기까지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긴 사투를 거치고 있음에도 백신을 통한 경제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는 암울한 모습이다. 2학기에 정상 등교를 한다는 아이들의 학력이나 사회성은 피폐해져 있을 것이다. 일자리도 관계망도 없이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는 세대 간의 고통과 우울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거기다가, 배달 앱을 통해 하루 270만 건의 배달과 830만 개의 포장쓰레기가 쌓이거나 태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다시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 이전, 인간–사회–자연 굴종의 굴레
절대 돌아가선 안 돼
단언컨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서도 안 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은 코로나19를 만들었던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그 어그러진 관계를 말한다. 이집트 파라오의 절대 군주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출애굽을 하던 유대인이 광야에서 40여 년을 방황하며 새로운 자유의 땅을 찾아 나선 것처럼 우리 사회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성장과 굴종에 길들여진 삶에서 자유와 풍요의 삶을 향한 여정을 위해 우리의 생각과 삶이 변하는 시간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고 절박하다. 희망적인 것은 전국에서 기후위기를 위기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고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같은 전국 행동과 지역조직, 종교의 각성, 각 영역별로 구체적인 기후위기 전환 로드맵에 대한 토론과 논의들이 조금씩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채식과 제로웨이스트 등 개인의 실천뿐 아니라 법개정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농업과 교육, 순환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제안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포스트성장사회 탈성장세계
에너지와 자원 사용 줄이고 성장 집착 버리자
지난 6월 19일에 개최되었던 2021한국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의 주제는 ‘포스트성장사회와 페미니즘 돌봄 전환’이었다. 페미니스트 그린뉴딜을 주장하는 수잔 팔루션은 팬데믹과 그 이후의 탈성장세계에서 돌봄과 공유화의 필요성을 말하며 탈성장의 목표를 첫째, 부유한 국가의 에너지와 자원 이용 줄이기, 둘째, 성장에 대한 집착 억제, 셋째 평등한 웰빙을 위한 사회 재편을 말하였다. 이날 여러 섹션에서 기후재난과 페미니스트 정치, 돌봄사회 책임의 재검토, 디지털 시대와 포스트휴먼시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여성학에서도 본격적으로 탈성장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성장은 곧 자연 파괴와 사회불평등 심화
탈성장은 풍요의 다른 사회 상상
유럽의 그린딜이나 미국의 그린뉴딜은 이미 탈성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경제는 더이상 성장이 불가능하고 성장은 곧 자연의 파괴와 그로 인한 사회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에서 대부분 공적자금을 이용해 자연과 조화로운 일자리와 복지에 대거 투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한히 만들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탄소경제는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의식 속에는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실업과 가난과 복지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탈성장은 단지 물질의 축소가 아닌 풍요의 다른 사회를 제안한다. 생산되는 상품의 양과 노동의 확대가 아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경제에 대한 상상력이 바뀔 것을 요구한다. 하루 830만 개의 포장쓰레기가 없어도 우리가 건강하게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며 돌봄노동이 물티슈처럼 취급되지 않고 존중과 감사의 대상이 되고 안식일에 모두가 자신의 창의성을 누리며 각자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공유할 것과 나눌 것이 많은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사회 말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 이루고
공유하고 누리고 나누는 풍요로운 사회
탈성장의 세계는 우리가 매일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하고 옷장 가득 패스트패션이 없어도 매력적이며 자동차 대신 자전거와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상상이다. 교육의 목표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사람이라면 그가 난민이든 이주민이든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수가 동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탈성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와 사회와 환경이 각자 떨어진 것이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 더 많이 벌지 않아도 지금 있는 것으로 모두가 더 잘 누릴 수 있고 충분히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 그것이 우리의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합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공항보다는 더 다양한 문화정책지원을 통해 지역을 되살릴 것이고 석탄화력발전소 대신 더 많은 여성과 청년의 일자리를 만들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예산을 보내도록 할 것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소득을 받고 지역사회 공동체와 더 좋은 돌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존경받을 것이다. 에너지를 덜 쓰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인간적인 삶을 지켜가는 사회. 이제 우리는 탈성장사회를 말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