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목) 제3차 길 위의 평화포럼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미 관계’를 주제로 온라인 줌 회의를 통해 진행되었다.
글 : 고유경 (WILPF-국제여성자유평화연맹 코디네이터)
2년 전 4월 27일, 10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에 이어 6월에는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새로운 북미 관계를 세워나가기로 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과 함께 전쟁 유해 발굴과 송환을 약속했다. 뒤를 이어 남북 정상은 9월 평양에서 다시 만나 4.27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후속 조치를 이어갔다. 남북 정상이 함께 한 자리에서, 남북 군 당국은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남북 합의 이행과 신뢰 구축에 어려움을 조성한 유엔사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합의 이행과 북미 간 협상 촉진을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가동하려 했으나 기대만큼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에 이르자, 남북 간 합의 이행이 독자성과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2018년 8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위해 남측 조사단 일행이 북측과의 철도 공동점검을 위해 방북하려는 것을 두고 유엔사가 이를 불허하였다는 소식이 있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의 통과나 비무장지대 출입에 대한 허가 권한을 갖는다. 이를 근거로 기간 문제와 자료 제출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지만, 한국 측 관계자는 과거와 다른 유엔사의 태도를 지적했다.
정전협정은 군사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령관 사이의 합의다. 그런데 전쟁상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남북 정상들의 합의를 이행하는 정치적 협력에 유엔사가 허가 권한을 행사하여 이를 지연시킨 것은 주권 침해라는 지적이 불거졌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 공동 철도 점검은 진행되었지만,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사의 이런 태도는 남측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북측과 협력사업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남겼다.
유엔사는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분야합의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남북 군 당국은 9.19 합의에 따라 판문점을 포함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조치에 착수했다. 그런데 유엔사가 판문점 비무장화 조치를 검증하는 남북 협의에 참여하겠다고 나서서, 우여곡절 끝에 결국 3자가 참여하는 회의 구조로 비무장화 검증이 진행되었다. 그 후 비무장화된 판문점을 남북이 공동 관리하려는 계획을 두고 유엔사가 여기에도 한 주체로서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남측이 유엔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유엔사가 판문점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막혀 남북 협의는 공전되다가 결국 멈추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 서명한 유엔사는 비무장지대를 관리하며 정전상태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 정전협정은 양측이 정치회담을 진행하여 전쟁상태의 평화적 해결을 달성하는 것을 이롭게하기 위해 양측 군사령관이 정전을 유지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남북 군 당국의 9.19 군사합의와 그 이행은 비무장화와 적대행위 중단, 단계적인 군축으로 정전을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정전협정 서명자로서 유엔사는 이런 노력에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게다가 유엔사는 1991년 판문점을 제외한 비무장지대 일대의 경비를 한국군에게 맡겼고, 2004년에는 판문점 경비 임무도 한국군에게 넘겼다. 한국군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유엔사가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경비 임무를 한국군에게 일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남측 군당국이 북측과 판문점 공동 관리를 해나가는 것은 실질적이면서 합리적이다.

2020년 7월 27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열린 한국 정전협정 67주년 기념식에서 유엔사 사령관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출처 경향신문)
한국 정부는 전쟁의 당사자이자 전쟁상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사자이다. 정전협정에 명시된 유엔사의 권한을 부인하지 않는 한국 정부가 남북의 협력으로 신뢰를 쌓고 평화와 군축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에, 유엔사가 협력하는 것이 정전협정에 부합한다. 남북 간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협의가 교착 상태에 이르면서 유엔사가 남측 군 당국을 신뢰하지 못하고 남북 군사합의 이행을 지연시켰다는 비난이 커졌다. 유엔사의 이런 태도는 미군의 허가 없이는 남측 군 당국이 북과의 합의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인식과 더불어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비협조적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평화를 이루려면 평화를 연습하자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대에 뛰어들려면, 오래된 냉전시대 군사적 대결의 제도와 관행을 벗어야 한다. 전쟁상태를 유지해온 제도와 틀을 부여잡을 경우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고 무력 경쟁만 불러올 뿐이다. 적대관계를 끝내지 못하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이루기 어렵다. 남북 협력이 활발한 때에 북미 간 협상도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미국이 남북 협력의 성공에 적극 협력하는 것이 비핵화의 지름길이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합의했다. 이어 9.19. 군사합의를 통해 땅, 바다, 하늘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의 각종 군사연습 중지, 상공에서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합의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2019년 들어 규모를 줄이기는 했지만, 연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 군사훈련을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말이다. 이 연례 훈련에는 북한을 점령하고 안정화하는 작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한국이 과거에 구매한 최첨단 F-35 전투기, 무인 정찰기 글로벌호크 등을 한국에 인도하면서, 자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는 큰 고객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비율로 국방예산을 늘리고 있다. 2019년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8.2% 증액한 46.7조 원, 2020년의 경우 7.4% 증가한 50.2조 원이다. 한국은행이 평가한 2019년 북한의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35조6천억 원으로, 한국의 국방예산보다 적다. 군사적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이 국방비를 상당하게 늘리고 여러 첨단무기를 수입하는 것은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을 불러오는 데다 9.19 군사합의에도 맞지 않다.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 데 기여할 외교-통일 예산은 올해 5조 원에 불과했다. 국방예산과 비교하면 10% 수준이다. 정부의 자원과 인력을 군사대결과 무기 경쟁에 집중하는 틀과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 신뢰 구축과 공존의 시대로 뛰어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평화를 연습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