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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만 난무한 기후위기 대응은 이제 그만!

이헌석 정의당 녹색정의위원장

 

지난 11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영국 글래스고에 전 세계 10만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기후변화협약 제26차 당사국 총회에 맞춰 열린 ‘기후정의 국제행동의 날’ 집회 때문이었다. 집회 당일 현장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등 기상 조건이 매우 좋지 않았음에도 ‘기후정의’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같은 날 영국에서만 100곳에서 집회가 열렸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300여 곳 이상에서 같은 이름의 집회가 열렸다.

 

‘기후정의 국제행동의 날’ 집회 행사장 이외에도 글래스고 시내에는 ‘블라블라블라’라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어쩌고저쩌고’ 정도로 번역되는 이 말은 스웨덴의 청소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해서 기후활동가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말이다. 각국 정상들이 너도나도 기후위기를 막겠다고 ‘어쩌고저쩌고’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에는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풍자한 표현이다.

 

이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야, 진보-보수할 것 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기후위기’를 말한다. 단순히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정도의 말은 이제 누구나 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화석연료를 판매하거나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기업조차 자신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하고 있다며 ‘그린워싱 – 친환경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은 선전만 하는 것’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후위기 문제는 환경 문제를 너머 사회 모든 것과 맞물려 있다

 

‘기후정의’라는 말이 기후활동가 사이의 보편적인 주장이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거대 자본이나 기업에서 기후위기를 말하면서 ‘기후위기 대응’은 주요한 산업의 일부분이 되었다. 예를 들어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면 일자리가 1/3 이상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기후위기 대응은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없애는 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과 같은 용어가 기후위기 대응에서 매우 중요하게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단순히 ‘환경을 지키는 선한 행동’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바로 깨질 수밖에 없다. 나의 선한 행동이 누군가의 일자리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직·간접적인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기후위기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확장한다면,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 사회 모든 것을 재설계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기후위기 문제는 환경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실제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 문제는 사회 모든 것들과 맞물려 있고,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나서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 ‘기후정의 국제행동의 날’에 참석했던 이들을 보면, 주거권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기후위기와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활동가, 제3세계 민중들의 인권과 생존권 운동을 하는 이들,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자 정치 그룹 등 다양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만 집수리 – 그린 리모델링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값싸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따뜻한 집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열공사와 집수리는 저소득층에게는 그대로 집값 인상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구조, 단계적 감축 VS 폐쇄

이는 해외 온실가스 감축, 혹은 온실가스 상쇄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진국들이 자국 내 온실가스를 줄이기 힘들어지자, 제3세계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을 준다며 진행하는 사업이 오히려 해당 국가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조상 대대로 살던 터전을 잃고 쫓겨난다거나 대규모 농장 개발을 통해 오히려 생물 다양성이 훼손되는 일이 ‘기후위기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기후위기’가 갖고 있는 이런 복잡함을 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백 년 동안 석탄, 석유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운영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화석연료 없는 세상, 탄소배출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손바닥 뒤집듯이 간단한 일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구조는 지금까지 자본주의를 움직여온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 196개국 대표들이 모여 매년 2주씩 진행하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이러한 대결과 논의가 이뤄지는 거대한 마당이다. 각국 정부의 대표는 대표들끼리, 시민사회단체는 단체들끼리, 정당은 정당끼리,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끼리 ‘기후위기’를 주제로 토론하고 행사를 진행한다. 또한 거대한 집회가 벌어지기도 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하고, 한쪽 편에서는 합의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번 26차 당사국 총회 역시 예정된 2주의 회의 기간이 다 끝났지만, 합의문 작성에 실패하여 회의를 연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끝까지 합의를 보지 못한 내용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phasing out) 할 것인지, 단계적 감축(phasing down)할 것인지 한 단어였다. 인도와 중국 등 석탄 사용이 많은 개발도상국은 ‘단계적 감축’을 주장했고, 이미 탈석탄을 많이 이룬 선진국들은 ‘폐쇄’를 주장했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약속한 기후기금을 충분히 내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도상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맹비난했고,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당사국 총회는 결국 단계적 감축을 합의문에 담으며,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막연한 기후위기 대응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과 해법 제시 필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역사적 배출 책임이 동일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도상국의 적극적인 감축 노력과 선진국의 지원 약속, 두 가지 조건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기후위기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에서는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이러한 장면들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컸다. 전세계에서 홍수와 산불,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현장 상황은 이러한 절박한 목소리와 거리가 멀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막연한 기후위기 대응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과 해법 제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해결 방안이 결국 누구를 이롭게 하는 것인지, 혹시라도 숨겨진 다른 이해관계는 없는지 살펴보는 혜안 또한 필요하다. 누구나 기후위기를 말하는 시대, 조금은 불편하고 복잡하지만, 기후위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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